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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0 17:13

월남민과 역대 정권, 대선 때마다 ‘주고 받기’ (2005.1.14)


월남민들은 대통령 선거 때마다 일관되게 보수성향 표심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역대정권과 대선 국면에서 정치적 거래를 한 내역이 밝혀졌다. 특히 이북5도청사 건립, 임진각 통일전망대 운영권, 월남민 공원묘지 경모공원 설립, 동화은행 설립 등은 모두 1987년 당시 노태우 후보가 자신을 지지하는 조건으로 허가해준 것이다.

 

이같은 사실에 대해 이경남 한국발전연구원 원장(전 동화연구소장)은 이승만 정권부터 노태우 정권까지 월남민과 정부의 관계를 “주고받기(Give and Take)”로 표현했다. 그는 “노태우 당선에 이바지하는 조건으로 은행설립과 공원묘지 허가, 5도청 건립을 제시했고 노태우 후보가 이를 승낙했다”며 “이북5도민은 노태우 후보에게 표를 결집해줬다”고 회상했다. 이북도민회는 지금도 통일전망대 운영을 맡고 있는 (주)동화진흥에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노태우-은행설립·5도청 건립

 

당시 월남민과 노태우 후보측의 중간에서 다리를 놓은 게 홍성철 당시 황해도 도민회장이었다. 노태우 대통령 집권 당시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을 했던 홍성철씨(현 황해도민회 고문)는 황해도 도민회장 자격으로 선거운동에 앞장섰다. 우연의 일치인지 노태우 대통령 재임기간 5년 동안 이북출신 국무총리는 강영훈(평북 창성, 88.12-90.12), 정원식(황해 재령, 91.7-92.10), 현승종(평남 강서, 92.10-93.2) 등 3명(3년 7개월)에 이른다.

 

이북도민회 측과 김영삼 대통령은 관계가 좋지 못했다. 노태우 대통령 당시 경모공원 부지를 확보해 1기 공사를 마무리지은 다음 2기 공사 허가를 받으려 했는데 김영삼 대통령이 허가를 안해준 것이다. 이 원장은 “김영삼에게 아부하는 장관 2명이 ‘인구조사를 해보니 한국인구 가운데 이북출신이 41만명 뿐’이라고 보고했다”며 “김영삼 대통령은 그 말만 듣고 ‘월남민 신경 안써도 되겠구나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2기 공사 허가를 안내줬다.

 

이 원장은 “김영삼 대통령은 월남민 표만 받아먹고 해준 건 아무것도 없다”며 “도민회 사람들은 김영삼을 ‘그 ××’라고 부른다”고 귀띔했다. 2기 공사는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 직후 사정을 보고받고는 바로 허가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장은 “1997년 대선 당시 90% 이상이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며 “이회창 후보는 대선 당시 경모공원 2기 공사를 허가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김대중-국고보조금 지원 유화책

 

역설적으로 이북도민회 중앙연합회 재정이 풍부해진 것은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였다. 김대중 정권은 매년 도민회마다 1천만원이 약간 안되는 돈을 국고보조금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보조금은 지금도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매년 지급한다. 정부는 2004년에는 5억4천만원을 국고보조했고 올해는 5억7천만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 원장은 “이북도민회에게 김대중 정권은 경제적으로 황금시대였으며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표현했다. “빨갱이 정권”이라는 공격에 대한 방어논리도 있고 반공성향이 강한 월남민 세력을 달랠 필요도 있었던 김대중 정권의 정치적 고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 이북도민회 관계자는 “동화은행을 퇴출시켰다는 부채의식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청사가 생기기 전에는 사무실도 없어서 15번 가량 이사를 다녀야 했다”며 “재정이 풍부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 전 정권은 선거나 행사 등에 이용해먹는 댓가로 금일봉 식으로 ‘당근’을 줬을 뿐 정기지원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김귀옥 한성대 교수는 “속초 아바이마을 주민들은 1992년 대선에서는 압도적으로 김영삼 후보를 지지했지만 1997년 대선에서는 김대중 후보를 지지한 사람도 생겼다”며 “이북도민들이 이회창 후보 등에게 몰표를 줬다는 주장은 엘리트 월남민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2005년 1월 14일 오전 7시 24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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