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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2 07:00

'선을 넘어 생각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항상 떠오르는 두가지 말이 있습니다. 하나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불교 격언, 다른 하나는 "항상 깨어있으라"는 복음서의 한 구절입니다. 

2015년 12월에 미국 조지아로 출장을 가게 됐습니다. 생활체육 기획기사를 위한 취재가 목적이었습니다만, 따로 시간을 내서 박한식 조지아대 명예교수를 인터뷰하고 싶었습니다. 어렵게 연락이 닿았고 겨우 약속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고 박한식 교수 인터뷰 안한다고 뭐라 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북한을 50번 넘게 방문했다는 북한문제 전문가를 만나서 얘길 나눠보고 싶다는 순전히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벌인 일이었습니다. 애초에 조지아대학교가 애틀란타 시내에 있는 줄 알았다가 한시간 반 넘게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걸 나중에 알고 당황하기도 했습니다만, 먼 길을 찾아간 보람은 있었습니다. 

인터뷰는 세시간 넘게 이어졌습니다.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박한식 교수는 여든살을 바라보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했고, 경상도 억양을 약간 섞은 말투로 또박또박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통일에 대한 소신을 밝혔습니다. 그는 “평화가 안보에 종속되면 안된다”고 강조하며 남북관계, 북미관계에서 발상의 전환을 강조했습니다. 박한식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회고록을 쓰고 싶은데 미국에서 50년 넘게 살아서 한국말로 글을 써본 적이 없다. 같이 책을 쓰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제게 했습니다. 인터뷰 전에 제 블로그를 살펴봤고, 제가 썼던 북한 관련 글 몇편도 이미 읽어봤다며 뜻이 잘맞을 것 같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저는 북한을 50번 넘게 방문한 얘길 원없이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쁘게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 1년이 다 되도록 박한식 교수한테 연락이 없었습니다. 여러 차례 메일과 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봤지만 답신이 없었습니다. 회고록 얘긴 잊어버리고 지내던 2016년 10월에 박한식 교수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연초에 심장수술을 했고 반년 넘게 요양을 하느라 연락을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회고록 공동저술 계획을 본격 추진하기로 의기투합했습니다. 아이폰 영상통화를 이용해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차 때문에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 일주일에 세번씩 인터뷰를 이어갔습니다. 대략 50번 가까이 인터뷰를 했습니다. 한 번 할 때 한시간에서 두시간 가량 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그걸 정리하는 작업을 병행했습니다.

당초 계획은 회고록이었지만 구체적인 기획안을 짜면서, 그리고 출판사와 협의를 거쳐 북한문제에 대한 대중적인 책을 쓰는걸로, 그 속에 구체적인 경험담을 풀어내는 걸로 정리가 됐습니다. 대중들에게 강연하듯이 대화체로 하기 위해 문장을 경어체로 바꿨고, 제가 질문하고 박한식 교수가 답하는 형식으로 원고를 재구성했습니다. 자료정리도 하고 선행연구도 참고하면서 저도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책 내용 가운데 많은 부분은 박한식 교수의 경험과 견해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예전에 발표하거나 블로그에 썼던 글을 보완한 부분도 있고, 책을 계기로 평소 제 생각을 다듬은 부분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대화와 토론을 거쳐, 둘의 목소리를 하나로 녹여냈습니다. 정말이지 학문하는 즐거움, 배우는 기쁨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해 7월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교열과 편집, 디자인 등을 마무리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작년 하반기만 해도 당장 전쟁날것 같은 분위기도 있고 해서 책이 쌩뚱맞게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만 다행히 새해 들어 정세가 급반전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남북정상회담을 눈앞에 둔 시점에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무척이나 기쁘게 생각합니다.

부족하지만, 박한식 교수와 제가 햇수로 3년에 걸쳐 공들여 만든 책, < 선을 넘어 생각한다>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교열과 편집과 디자인에 정성을 쏟아 멋진 책으로 완성시켜준 '부키' 출판사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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