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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8 09:09

이덕일의 '정신승리 사관'과 과대망상 어디까지 갈 것인가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되새기기 위해서도 아니고, 부동산 투기를 고대사까지 확장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서울신문에서 벌써 11회나 연재중인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가 딱 그런 경우다. 명색이 동북항일연군(북한에서 말하는 조선인민혁명군) 연구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근대사 전공 역사학자가 역사학의 기본인 사료비판은 깡그리 무시하며 '정신승리 사관'과 '우리 할아버지 집 크고 넓었다' 두가지로 서울신문 지면을 연초부터 도배하고 있다. 

 1월 9일자 첫 연재부터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사회가 중심이 없고 혼란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역사관이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정신은 유아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훈계를 늘어놓는다. 역사관을 바로 세우면 고구려 시조 주몽이 승천한 것도 달리 보인다는 말에 뒷목 잡았다. 역사관만 바로 세우면 김일성이 솔방울로 대포 만든 것도 다시 보이고 5·18때 북한 특수부대가 준동했다는 것도 다시 보일 것인가. “역사관 확립”이야말로 박근혜가 국정교과서 강행할때 내세웠던 명분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덕일이 식민사학자라고 그렇게 까대는 역사학계는 똘똘 뭉쳐 국정교과서 반대운동을 했다. 그때 이덕일이 국정교과서 반대운동에 동참했다는 얘긴 들어본 적이 없다. 이덕일은 입만 열면 식민사학 때문에 나라 망할 것처럼 떠들지만 그 기준대로라면 대학원에서 정식으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자신이야말로 식민사학자의 후예가 아니고 뭔가. 

 첫회에서 역사책이랑 족보도 구분 못하는 수준을 보여주더니 그 다음부턴 철지난 동이족 타령에 한사군 난동이다. 공자가 활동하던 춘추시대 동이(東夷)는 우리가 아는 그 동이랑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건 안중에도 없다. 

한사군이 평양에 없다는 주장도 황당하기 이를데 없다. 이덕일이 말하는 1차사료가 사실은 1차사료가 아니라는 건 의도적으로 무시한 채 '1차사료'를 갖고 장난을 계속 친다. 이덕일은 한사군이 한반도에 없었다며 성호 이익과 연암 박지원을 끌어들이지만 정작 다산 정약용이 <아방강역고>에서 “한사군은 지금의 평양”이라고 했던 건 쏙 빼먹었다. 이덕일 논리대로라면 정약용도 식민사학자인가. 

한사군이 요서에 있었다는 주장이 근대 역사학의 외피를 쓰고 학설로 등장한게 1960년대 북한 학자 리지린 때문이었고 그의 책을 1980년대 윤내현이 표절하면서 국내에서 한사군 요서설이 활발해졌다는 건 또 왜 언급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덕일은 3월20일자에선 조선시대 영토까지 왜곡하는 행태를 보인다. 하지만 <세종실록지리지>나 <동국여지승람> 등 이덕일이 그렇게 강조하는 '1차사료'는 깡그리 무시해버린다. 

'우리 영토 넓었다'는 주장과 '한사군은 한반도가 아니라 요서에 있었다'는 주장 모두 현실에 대한 열등감, 그리고 지금의 관념과 욕망을 과거에 그대로 투영하는 것과 직결돼 있다. 

이덕일은 줄기차게 영토 얘길 한다. 따지고 보면 그건 '지금 우리는 달동네에서 찌질하게 살지만 고조할아버지의 고조할아버지의 고조할아버지는 만석꾼이었다'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은 달동네에 살지도 않고 찌질하지도 않다. 지금 우리가 영토가 적어서 찌질하게 산다는 생각은, 마치 자기 XX가 작은거에 자격지심을 너무 크게 느낀 나머지 XX 얘기만 나와도 지레 발끈하거나 혹은 허풍으로 자기 찌질함을 감추려는 '찌질한 남정네'를 떠올리게 할 뿐이다. 

이덕일 기고문은 현실의 인식, 지금의 관념과 욕망을 과거사에 투영할때 벌어지는 참사를 잘 보여주는 살아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한사군이 평양에 있었다. 그게 중국이 북한을 점령하는 근거가 된다고 보는가? 몽골이 칭기스칸의 업적을 강조하면 그건 곧 몽골이 폴란드를 합병하는 법적 근거가 되고, 중국이 청나라의 광대한 영토를 자랑하면 그게 곧 중국이 몽골을 병합하는 정당성을 부여해준다고 보는가. 애초에 한사군을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식민지'라는 틀로 2000년전 역사를 접근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마찬가지로 공자가 설령 한민족이었다고 한들 그게 '공자는 한국사람'이란 뜻도 아닐 뿐더러, 2000년도 더 옛날 사람을 지금 기준의 민족 기준으로 보는 것 역시 쓰잘데 없는 짓일 뿐이다. 그런 사례 모두 이덕일이 얼마나 역사학의 기본에서 멀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징표가 아닐까 싶다. 


 이덕일의 과대망상이 어디까지 갈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전국언론노조 서울신문지부에서 발행하는 노보 최신호에 기고한 글 초고입니다. 노보에선 내용을 일부 축약해서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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