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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1 20:09

페미니스트, 낙인의 계보

발단은 지인 두 명과 나눈 대화였다. 한 여성 교수 얘기가 나왔는데 한 지인이 그 교수를 일컬어 “그 교수는 페미니스트”라고 했다. 다른 지인은 “전투적인 건 아니고 합리적인 페미니스트”라고 표현했다. “메갈리아 같은 이상한 쪽은 아니다”는 말도 등장했다.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그 구분법은 며칠 전 읽은 한 기사를 계기로 내 머릿속을 가득 메워 버렸다.

너 페미니스트냐? 

‘레드벨벳’이라는 걸그룹에서 활동하는 아이린. 3월 18일 팬 미팅에서 누군가 최근에 읽은 책이 뭐냐고 물었다. 아이린은 두 권을 말했는데 그 중 하나가 [82년생 김지영]이었다. 그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아이린을 비난하는 글이 폭주했다. 이유는 아이린이 그 책을 읽은 것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선언했다는 의미라는 거다. 심지어 어떤 팬은 아이린 사진 화형식을 하는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82년생 김지영]과 일부 팬이 '탈덕'을 선언하며 아이린의 사진을 태우는 모습(갤러그 게시물 캡처).


지난 2월에는 ‘에이핑크’라는 걸그룹에서 활동하는 손나은이라는 사람이 ‘여자는 뭐든지 할 수 있어’’라고 적힌 휴대전화 케이스를 든 사진을 올린 문제로 일부 팬들한테 항의를 받았다. 지난해에는 여성 연예인이 영문으로 ‘여자에게 왕자님은 필요없다’는 말이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가 격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 둘 다 페미니스트를 연상시킨다는 게 이유였다.


솔직히 말해 레드벨벳과 아이린, 에이핑크와 손나은 모두 그 기사를 보고 처음 알았다. 별 관심 없다. 굳이 어떤 그룹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찾아볼 생각도 없다. 다만 두 가지 면에서 그 기사가 내게 충격을 줬다.


일단, 어떤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게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자칭 ‘팬’이라는 사람들이 다 큰 성인한테 ‘이런 책을 읽어라’ ‘이런 책은 읽으면 안된다’고 타박하는 꼴이라니. 그 ‘일부’ 팬들 발상대로라면 아이린이 [나의 투쟁]을 읽으면 순식간에 나치가 되고,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면 느닷없이 게이라도 된단 말인가.


두 번째로 놀랍고도 충격적인 건 그들이 ‘페미니스트’를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짐작하건데 그들은 ‘페미니스트’를 사회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배척해야 하는 부도덕한 어떤 것으로 구성하는 듯 하다. 어줍잖게 페미니스트가 좋으니 나쁘니 하는 걸 따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이 페미니스트를 낙인찍는 방식은 얘기를 하고 싶다. 그들이 ‘너 페미니스트냐’는 질문하는 것 자체가 폭력 행사로 비치기 때문이다.


너 전라도냐? 

10여년 전에 인권연대에서 주최하는 ‘홍세화 초청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 그는 한국에서 “너 전라도 사람이냐”는 질문과 “너 경상도 사람이냐”는 질문이 갖는 차이를 들어 차별과 낙인을 설명했다. 한국이라는 맥락에서 “너 전라도 사람이냐”는 질문은 그 자체로 구별짓기와 낙인찍기를 내포하는 반면 “너 경상도 사람이냐”는 질문에는 그런 맥락이 전혀 들어있지 않다. 마치 미국에서 “너 기독교도냐”와 “너 무슬림이냐”라는 질문과 본질적으로 다를게 없다. 그런 고민에서 우리는 “너 페미니스트냐”라는 질문이 갖는 폭력성을 확인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인지 묻는 것 자체가 폭력으로서 작동하는 건 페미니스트라는 용어 자체가 사회적 낙인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낙인을 숱하게 봐왔다. 당장 앞에서 예로 든 ‘전라도’가 그렇다. 한때 ‘빨갱이’에 집중하던 ‘일부’ 목사님들과 독실한 ‘일부’ 신도들께선 요즘 ‘동성애자’ 때려잡기에 여념이 없다. (이분들이 낸 신문광고에 동성애 옹호하는 드라마 보고 자기 자식 동성애자 되면 책임질 거냐는 말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바쁜 일상으로 지쳐가던 제게 큰 웃음을 주신 목사님들께 이 글을 빌어 무지하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2013년 국정원 국정조사에서 당시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이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권은희 증인에게 "증인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길 바랐죠?"라고 묻자, 이에 대해 답하는 모습. 여전히 우리 사회에선 무지하고, 폭력적인 '십자가 밟기'가 횡행한다.


한반도 남쪽에서 반세기 넘게 이어온 ‘빨갱이-친북-종북’은 말 그대로 낙인찍기의 한 정석이다. 자사고 폐지와 고교평준화 강화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너 빨갱이냐’ 혹은 ‘너 종북이냐’라고 묻는다면 그들이 원하는 건 둘 중 하나일 뿐이다. ‘예 저를 죽여주시옵소서’라고 업드리거나 ‘전 빨갱이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옹색한 변명을 하거나. 대화와 토론, 소통과 공감이 들어갈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멀리 볼 것 없다. 생각해보면 박근혜가 청와대를 깔고 앉아 하던 짓이 딱 그랬다. 우리는 박근혜가 세월호를, 야당을, 시민단체를, 그리고 국민들을 어떻게 낙인찍고 배제하고 감시했는지 분명히 기억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읽었다는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매도당한다면 우리가 그토록 힘들게 몰아냈던 것들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쁜 동성애자’가 있고 ‘좋은 동성애자’가 있는게 아니라 그냥 동성애자가 있을 뿐인 것처럼, ‘좋은 페미니스트’가 있고 ‘나쁜 페미니스트’가 있는게 아니라 그저 차별에 반대하고 성평등을 (온건하게 혹은 전투적으로) 촉구하는 페미니스트가 있을 뿐이다.


'인권연대' 기고문을 슬로우뉴스 발행 원칙에 맞게 편집한 글을 옮겨왔습니다. (편집자)


Trackback 0 Comment 3
  1. 고핸 2018.03.22 10:1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당신은 지금 상당히 역겹고 이기적이며 천박한발상을 하고있네요 하나하나 짚어봅시다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겁니다 우리나라 페미니스트들이 정상적이리고 보는건지? 그들은 위선자이며 양성평등을 가장한 여성우월주의로 가자는거 사람들은 다 압니다. 일부 적이고 몰지각하고 졸렬한 소위 꼴페미들을 제외하고 말이죠...양성평등을 꼴페미들이 다 파토내고 있는 현실을 그들만 모르죠 멍청한건지 머리가 나쁜건지..극성맞고 유난스럽기까지..

    당신은 선이고 상대방을 악으로 구분짓는 흑백논리와 이중잣대를 들이내미는건 아주 위험한 발상입니다 심지어 당신이 주장하는건 비합리적일뿐만 아니라 개연성, 타당성도 없으며 이념편향까지 되어있습니다.

    그들은 의무는 싫고 권리만 원하는 인간들 정말 추하고 재수없습니다 투덜거리기만 할거면 닥치고 그게 아니면 그냥 찌그러져 있는게 국익에 도움이 됩니다.

    꼴페미에 이어 제대로된 동성애자가 있을까요?
    가만보면 꼭 욕처먹을짓을 하고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건 무슨 찌질이들 일까요?

    그들은 문란하고 변태적이며 제대로된 가치관과 사고방식 또한 미숙합니다. 각종 sns에 옿려놓는
    추악한 내면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들끼리 좋으면 그냥 조용히 지내면 되는거지
    꼭 거리에 나와서 퍼레이드를 하고 퍼포먼스를 하고 정말 극혐입니다 자기네들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징징대는데 다 싫어하는데 이유가 있습니다
    강요하지마세요 진짜 밢아버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박근혜 대통령이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같이 해야하는거 아닌가요?
    같지도 않는 선동글 그만하시고 형평성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어른들 중에서도 우매하고 후진 인성을 가진 인간들이 너무 많으니까요..생각좀 하고 글쓰세요..

  2. 진짜 우매하고 후진... 2018.03.23 14:2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말 같지도 않은 댓글은 좀 삭제했으면 좋겠음. 보고 있기 상당히 불쾌함

  3. Sam Kim 2018.03.23 15:1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페미니즘이 '워마드/메갈'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페미니즘을 향한 손가락질은 당연히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기사에서는 메갈/워마드도 '급진적 페미니즘'으로 포함해주려고 애쓰고,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메갈/워마드에 눈감고 동조하니까... 페미니스트냐는 질문이 낙인이 되는 겁니다.

    미러링에 대해서 이렇게들 말씀하시지요? "여성혐오가 있으니 미러링이 존재하는 것이고, 여성혐오가 사라지면 미러링은 당연히 사라질 것이다." 미러링을 잃지 못하는 근거로 사용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워마드/메갈에서 한 수많은 폭력과 범죄가 '정당화'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페미니스트들 내부에서도 스스로 자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데 인정해줄 생각은 없나요? 나쁜 페미는 없다고 말하면서 메갈/워마드를 끌어안고 가야한다, 그게 여성인권운동의 핵심이라면 그 페미니즘을 오빠가 아니라 대중이 싫어합니다.

    페미니즘의 일을 하세요. 남성파괴, 혐오미러링, 쇼타로, 고인모독, 너무 많은데....... 그런 건 그만두고, 페미니즘의 일을 하세요. 메갈/워마드로부터 분리되려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아냐, 메갈/워마드는 나쁜 게 아니야"라고 말하지 마세요. 1000개의 페미니즘이 있다면서요. 메갈/워마드 싫다는 페미니스트들에게 "너도 메갈/워마드 찬성하지 않으면 편협한 흉자야"라고 말하는게 메갈/워마드예요.

    난 메갈/워마드 들어가본 적도 없고 잘 몰라, 그러니까 나한테 메갈/워마드냐고 묻지 마......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진짜 대다수인데, 결국 메갈/워마드 모른다면서 옹호하는 건 그들의 미러링, 그들의 조롱, 그들의 혐오문화더라고요.

    아래 댓글에, 왜 마녀사냥과 같은 질문이 세대가 변해도 반복되냐고 물으신 분이 있는데.... 페미니즘이 메갈/워마드를 겪고도 변하는 게 없으니까 그렇죠. 메갈/워마드 옹호하는 사람들 보면 정말 안타깝습니다. 메갈/워마드를 옹호하는데에는 '1000개의 페미니즘'이 쓰이면서, 메갈/워마드 없이도 페미니즘 운동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흉자'라고 몰아붙이는 이중성은 정말 지양해야 할 태도입니다.

    "오빠가 좋아하는 페미니즘 할 생각 없다"는 말은 메갈/워마드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 없습니다. 페미니즘이 자꾸 욕 먹는 이유를 제발 이해하려고 시도라도 해보세요. 여성인권운동에 메갈/워마드라는 커뮤니티와 그 컨텐츠와 방법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이제는 반응해준다구요? 이제는 여성혐오가 뭔지 안다구요? ... 그건 메갈/워마드가 칼들고 설치니까 '뭐야 저 미친것들은' 하고 놀라는 거지, 여성이 정말 힘들고 어렵구나 공감해서가 아니에요. <김지영>이나 <입트페>에서 지금 메갈/워마드가 해온 방식대로 자X가 어쩌고 뭐 그런 식으로 말했다고 생각해보세요.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하지 않았죠. 좋은 선택이었어요.

    워마드식으로 책을 썼다면 '남자'들이 아니라 '대중'이 '미친책'이라고 손가락질 할 겁니다. 모두의 승인을 받아야 할 필요도 없고, 모든 사람들이 잘한다고 칭찬하는 운동일 필요도 없다고 '메갈/워마드식 페미니즘'을 포장하는 것을 멈추면, 더 많은 대화가 가능하고 더 많은 시도가 가능합니다. 점점 여성들이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은 사회가 발전해서이이지 페미니즘이 발전한 게 아니에요. (소라넷 없앴으니 메갈 위대하다고 말하면서, 일베 깐 오유는 일베확장판으로 몰아가는 편협함에서 벗어나세요. 눈을 좀 크게 뜨시길.)

    참 슬픈 일입니다. 메갈/워마드에 본진을 둔 이상한 사람들부터 페미니즘을 외쳐온 것이 굉장히 역설적이에요. 그들의 불편함은 사회로 퍼져나가 더 많은 여자와 남자를 편가르고 더 많은 싸움을 부추깁니다. 여성의 인권이 향상되는 거랑 무관하게 <자궁이식>같은 개소리를 하고요. 불리하면 퍼포먼스일 뿐이라고 하고, 워마드에서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그게 '진실'인데도요. 양면전술 그만 쓰고, 메갈/워마드에서 탈피합시다. 예쁜 페미니즘을 하라는 게 아니라 정상적인 것만 남기고 이상한 것들은 빼버리라는 거예요. 모든 걸 남녀 대립 프레임으로 씌워놓고 보면, 여자로 태어난 것 부터가 저주 아닙니까? 왜 하필 여자로 태어나서 생리도 하고 애도 낳아야되고... 이런 이야기가 정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사고가 낭비되었는지.

    메갈/워마드로부터 벗어나세요. 페미니즘은 앞으로 더 갈 길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