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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9 18:00

곳간 열쇠 쥔 기재부, '수시배정'으로 정부부처 길들인다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 조성사업은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진행되는 사업이지만 지난해 책정된 예산 25억원 가운데 실제 집행된 건 한 푼도 없었다. 2013년에 정부가 사업계획 적정성을 검토할 때만 해도 전북도는 용지 구입비용만 부담하고 이를 제외한 사업비(383억원)는 전액 국비로 지원해 2017년까지 사업을 마치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사업추진방식을 전액 국비지원이 아닌 50% 지방비 매칭으로 변경할 것으로 요구하면서 사업진행이 막혀버렸다. 기재부는 이 사업을 수시배정으로 분류했고, 전북도와 합의가 안되자 공사비를 아예 내주지 않았다.


 국회가 예산 수시배정에 단단히 뿔났다. 지난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선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배숙 국민의당 의원, 김기선 자유한국당 의원, 엄용수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일제히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에게 ‘기재부가 수시배정을 정부부처 길들이기로 악용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소방안전교부세를 수시배정으로 지정한 것은 위법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 부총리는 “수시배정을 할 필요가 없는 사업들이 있는지 꼼꼼히 보고 꼭 필요한 것만 적용하겠다”고 답변했다.

 수시배정은 국회에서 확정된 예산 중에서 사업계획이 미비하거나 법률 제·개정 등 조건을 충족해야만 집행이 가능한 사업에 대해 기재부가 사업계획을 검토한 뒤 그 결과에 따라 예산을 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수시배정으로 보류된 예산은 기재부가 사업계획 수립 등 요건을 충족했는지를 확인·승인해야만 배정이 된다. 수시배정은 2010년까지만 해도 명확한 기준도 없었다. 국회 요구에 따라 2011년 지정 기준을 만들었지만 대체로 3~4가지 기준만으로 수시배정사업을 선정하다가 2015년이 되어서야 11가지 기준을 만들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민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도 기준으로 수시배정사업은 28개 부처 173개(4조 4398억원)였다. ‘구체적인 사업계획 마련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수시배정에 선정된 사업이 66개(1조 3010억원)였고, ‘효율적 집행을 위해 점검 필요’가 35개(1조 8840억원)였다. 정부부처별로 보면 국토교통부가 23개로 가장 많고, 산업통상자원부 19개, 해양수산부 14개 등이다. 대상액 기주능로는 교육부가 1조 5057억원, 국민안전처가 1조 282억원이었다.


 수시배정은 예산의 효율적인 집행관리를 위해서 생긴 제도다. 지난달 23일 국회 예결특위에서 김용진 제2차관이 언급한 사례는 수시배정의 취지를 잘 보여준다. LPG배관망지원사업이 수시배정으로 지정돼 예산배정이 안됐다는 지적에 대해 김 차관은 “2016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당시에는 아직 예비타당성 조사가 실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회에서 예산이 반영됐던 사업”이라면서 “2016년도에 타당성 재조사 결과를 보고 예산을 배정하기 위해서 수시배정대상사업으로 관리를 했다”고 답했다. 지역예산 챙기기 등에 대한 견제장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문제는 수시배정 자체가 기재부 자체 판단에 따라 이뤄지면서 각종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지난해 수시배정사업 중 국회에서 증액시킨 사업이 109개나 된 것에서 보듯 기재부가 국회의 예산권한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연내 집행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수시배정도 문제로 꼽힌다. 지난해 수시배정 사업 중 23개는 예산 배정액 대비 집행률이 50%가 안됐고, 8개는 아예 예산 집행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심지어 수시배정으로 지정된 기재부 소관 사업인 ‘국제금융기구 출연’도 예산 100억원을 한 푼도 집행하지 못했다.

 기재부가 수시배정 제도를 정부 부처나 지자체 길들이기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2014년에 e-호조를 둘러싼 기재부와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의 의견대립은 수시배정이 실제로 갑질로 둔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2014년도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행자부는 e-호조 기능고도화 예산 추가 편성을 요구했지만 기재부는 ‘지자체 추렴해서 e-호조 기능 고도화 비용을 조달하라’며 정부예산안에서 7억원만 반영해줬다. 행자부에선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국회를 통해 국회증액사업으로 15억원을 통과시켰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기재부는 ‘e-호조 관리주체가 불명확하다’며 수시배정으로 지정했다. 기재부는 10월이 되어서야 12억원을 행자부에 배정해줬다.


 현재 국회에선 수시배정 현황을 분기별로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 두 건이 계류돼 있다. 공교롭게도 그 중 하나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해 7월 대표발의한 것이다. 국회는 2015회계연도 결산 당시에도 부대의견으로 “수시배정 사업의 경우 상반기 중에 지정사유 및 집행현황 등을 국회 소관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제출한다”는 의견을 채택한 바 있다. 지난 1월에는 법무법인 은율이 국회 예결특위에 제출한 연구용역보고서에서 “수시배정 사업으로 선정된 예산을 배정받는 절차는 기재부가 임의로 정하고 있어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수시배정 제도가 자의적으로 운영되지 않도록 2015년부터 대상사업 선정기준을 3개에서 11개로 구체화하는 등 지속적인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수시배정 대상사업을 최소화하고 지정사유가 해소되는 대로 즉시 집행할 수 있도록 집행지침에 협의기간을 명시(10일 이내)하는 등 효율적인 운영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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