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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01 15:02

2004 세계사회포럼에서 길을 잃다

카니발 혹은 해방구, 그것도 아니면 난장


세계사회포럼 첫날부터 나는 흙먼지 속에서 길을 잃어 버렸다. 

흙먼지와 함께 떠오르는 뭄바이의 아침 해를 맞으며 나는 릭샤를 타고 세계사회포럼 현장으로 향한다. 취재한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뛴다. 포럼을 찾아서 워크숍을 찾아서. 밤늦게 터벅터벅 숙소로 돌아온다. 매연을 조금이라도 피하려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은 채 나는 숙소와 행사장을 왔다 갔다 한다. 하루가 너무나 정신이 없어서 끼니를 거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도 나에게 1분만이라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드는 생각. “도대체 세계사회포럼이 뭐지?” 사회포럼 사흘째, 드디어 나는 약간은 좌절해서 나에게 물었다. “무엇을 바라 여기까지 왔나?” 

세계사회포럼은 엄청난 규모의 행사이다. 참가자만 8만 명이고 16일부터 21일까지 5박6일이나 열린다. 준비된 행사만 1200여 개. 길을 가득 메운 채 벌어지는 시위와 퍼포먼스.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 대항해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로에서 2001년 처음 열린 세계사회포럼은 반세계화를 넘어 대안세계화를 모색하는 ‘운동들의 운동’이다. 올해 처음으로 브라질이 아닌 인도 뭄바이에서 열렸지만 내년에는 다시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로에서 열린다고 한다. 

“대변인이 없는게 당연하다” 

이성훈 팍스로마나 사무총장은 “세계사회포럼이라는 이름 속에 모든 문제가 들어있다”고 말한다. ‘세계’는 규모의 문제, ‘사회’는 내용의 문제, ‘포럼’은 형식의 문제이다. 세계사회포럼을 둘러싼 모든 갈등과 반목은 이 세 가지에서 나오는 문제다. 

이 총장은 “세계사회포럼을 세계 모든 운동들의 운동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브라질 운동의 세계화”라고 말한다. 세계사회포럼은 애초 유럽시민사회 특히 프랑스 시민사회와 브라질 운동이 결합했다. 눈에 보이는 세계사회포럼의 모습도 지극히 라틴양식이다. 그런데 2년여에 걸친 로비 끝에 2004년 개최지가 인도로 결정되었다. 그럼 아프리카에서 개최하지 말란 법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2005년은 다시 브라질이란다. 

세계사회포럼 행사장 맞은편에는 뭄바이 레지스탕스라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세계사회포럼의 활동방식에 반발한 일부 세력이 따로 조직한 행사가 뭄바이 레지스탕스이다. 내가 듣기로는 레지스탕스 쪽은 행동을 강조하면서 “얘기는 지겨울 만큼 했다. 언제까지 얘기만 할 거냐”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계사회포럼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한 인도 인사는 “한자리에 모여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소중하다. 세계사회포럼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고 반박한다. 무력투쟁을 배제하지 않는 뭄바이 레지스탕스와 비폭력노선을 추구하는 세계사회포럼, 정치적 성향이 강한 뭄바이 레지스탕스와 정치조직과 군사조직의 참여를 원칙적으로 배제하는 세계사회포럼. 여기에 ‘사회’와 ‘정치’를 둘러싼 팽팽한 긴장이 존재한다. 

누구나 참여해 떠들 수 있는 게 포럼이다. 거기에는 선악이 없고 선후가 없다. 뭄바이 레지스탕스는 그것만으론 성에 차질 않는다. 하지만 세계사회포럼 조직위원회는 “성명서도 만들고 행동도 하자”는 주장을 부정한다. 종파성과 당파성을 피해가려는 것이다. 그걸 건드리는 순간 벌집을 쑤시게 된다. “대변인이 없는 게 당연하다. 공식입장이 있을 수 있겠나.” 

카니발 혹은 해방구, 그것도 아니면 난장 

엄기호 전 팍스로마나 아태 담당은 “세계사회포럼이 너무 반전으로만 쏠린다”며 “세계사회포럼인지 정치포럼인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제기한다. 그는 “이제는 제발 ‘다함께’가 아니라 ‘따로’ 움직이자”고 말한다. “각자 자기가 속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 왜 선후를 나누고 경중을 나누는 거냐. 예를 들어 반전운동가가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에게 “동성애자 인권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반전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말하며 반전운동만 중시한다면 그게 옳은 자세인가.” 그래서일 것이다. 한국에선 세계사회포럼 기사보다 부시낙선운동만 관심을 끄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자신이 부시낙선운동에 관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 

세계사회포럼 행사장에서 신나게 춤추며 즐기는 사람들 가운데 ‘달리트’들이 있다. 이름 하여 ‘불가촉천민’. 인도 카스트 제도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행사장에서는 당당하게 춤추며 노래하지만 행사장을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면 제대로 고개도 못 들고 다닐 정도로 일상화된 차별을 겪고 있다. 이성훈 팍스로마나 사무총장은 “불가촉천민인 달리트에게는 이렇게 모여서 한판 잔치를 벌이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일러줬다. 그는 이어 “세계사회포럼은 그 자체가 해방구이자 잼버리 대회”라며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함께 즐기는 게 남는 거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춤추는 달리트 무리와 섞여 춤을 춘다. 

19일 저녁, 이제 출국이 몇 시간 남지 않았다. 내일 새벽 4시 30분이면 나는 뭄바이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간다. 여전히 나는 세계사회포럼이 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거나 짜증을 내진 않는다. 돌아가는 판을 모두 알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세계사회포럼을 영원히 알 수 없는지도 모른다. 나 자신 많은 것을 배웠다면 그것으로 욕심을 접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생각해본다. 내년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할 기회가 있다면 올해처럼 허둥지둥 대진 않을까. 대답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하지만 뭐, “운동이 뭐냐”고 묻는 나에게 “편향에서 편향이 운동이지.”라고 한 어느 선배의 대답을 떠올리며 열려진 미래에 다양한 나의 결정까지도 열어두고 싶다. 


참여연대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www.peoplepower21.org/Magazine/715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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