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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9 09:55

왜 대한민국 대통령이 북한 도지사를 임명할까


  “북한 관영방송인 조선중앙방송은 오늘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박완순·김만수·안휘정 당 중앙위원을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충남도지사에 각각 임명했다고 보도했다. 김 제1비서한테서 직접 임명장을 수여받은 이들은 1945년 8월15일 기준으로 아직 수복하지 못한 공화국 남반부 이남9도를 담당하며, 통일과 동시에 현지 행정을 담당할 예정이다. 지위는 차관급이다. 방송은 ‘이남9도에 대한 국토관념을 명확히 하고 언젠가는 기필코 달성하고야 말 실지회복에 대한 통일의지를 표명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에서 남한의 도지사를 임명한다면?

이런 보도가 나왔을 때 한국사회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 예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지상파와 종편, 일간지에선 일제히 특집기획보도를 쏟아낼 것이고 청와대와 국회에선 격렬한 논평과 담화문으로 옥신각신할 것이다. 십중팔구 세종로 사거리에선 짝퉁 군복을 입은 할배들이 김정은과 박완순 화형식을 하지 않을까 싶다. 유엔에서 문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글머리에 인용한 조선중앙방송의 내용은 완전한 허구고, 풍자다. 휴전선 이북을 차지한 정부에서 서울시장을, 그것도 공개적으로 임명하는 일 따위는 없다. 그런데 바로 딱 그런 일이 휴전선 이남에선 일어나고 있다. 황해도지사, 평안남·북도지사, 함경남·북도지사 등 5명을 차관급으로 임명하고 대통령이 직접 임명장도 준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임명하는 북한 도지사

심지어는 평양시장, 평양에 있는 각 동장까지 임명한다. 그렇게 임명장을 받는 사람이 1,000명가량 된다. 정부예산으로 수당도 준다. 이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이 글은 몇십 년 동안 너무나 당연한 듯 계속된, ‘완벽하게 합법’인 관행을 삐딱한 시선으로 파고들려는 고민의 산물이다.[각주:1] (슬로우뉴스에도 동시발행했다. 멋진 편집을 해주신 편집진에 꾸벅~)


2003년 이북5도지사 임명 기사 (출처: 서울신문)

2013년 이북5도지사 내정 기사 (출처: 서울신문)


통일하면 북한에 가서 행정업무를 본다?

  서울 강동구에서 온라인유통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는 박모(45)씨[각주:2]는 부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이후 줄곧 서울에서 살았지만 본인은 “내 고향은 평안북도”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전쟁 와중에 평북 삭주군에서 홀로 월남했고, 어머니는 평북 박천에서 일가가 모두 월남했다. 지금도 집안에선 평북 사투리가 표준어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따라 평북도민회 모임을 따라다닌 그는 이제는 삭주군 명예군수도 맡고 있다. 그는 안전행정부 산하 이북5도위원회가 임명하는 명예 시장·군수(임기 3년) 가운데 최연소다.


  명예 군수로서 박씨가 하는 일은 두 달에 한번씩 도지사가 주재하는 시장·군수 모임에 참석하고 매년 어린이날 열리는 도민체육대회와 10월에 열리는 이북5도민중앙연합회(이하 연합회) 체육대회 준비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밖에 청년프로그램이나 해외연수, 기업체견학 등이 있는 정도다. 위원회에 따르면 명예 시장·군수 평균 연령은 63세, 명예 읍·면·동장 평균 연령은 56.6세다. 월남민 1세대가 70~80대 이상이라는 걸 감안하면 활동 중심은 월남민 1.5세대와 자녀세대로 넘어갔다. 이런 현실은 이들이 자신이 맡은 곳에 대한 직접 경험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명예 시장·군수들은 자신들이 “절반은 공무원이고, 통일이 되면 그대로 북한에 가서 행정업무를 보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통일 후 공무원으로서 역할을 교육받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내 “특별한 행정실무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면서 “실제 업무를 할 수 있을까 묻는다면 솔직히 자신은 없다”고 인정한다. 김성겸 위원회 사무국장 역시 “행정·교육훈련은 없다”면서 “우리가 북한 사정을 알기는 한계가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한 안행부 관계자도 “통일 이후 위원회가 북한 행정을 담당한다는 것은 꿈같은 소리”라고 말했다.


시장·군수는 27만원, 읍·면·동장은 12만원 수당

현재 명예 시장·군수는 92명, 명예 읍·면·동장은 911명이다. 이들이 하는 일은 순전히 민간단체 차원의 친목 도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통일 이후는 물론이고 하다못해 이산가족상봉 준비에서도 이북5도위원회나 연합회가 낄 자리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이들이 명예직이라는 성격에도 불구하고 일반 통·반장처럼 정부가 지급하는 수당을 받으면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명예 시장·군수는 월 27만원, 명예 읍·면·동장은 월 12만원을 지원받는다. 

  (월27만원은 대통령 박근혜가 호기롭게 공약했다가 파기해버린 "모든 노인에게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기초연금 월 20만원 지급"보다 7만원이나 더 많다는 걸 기억하자.)

김상철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월남민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정부가 20억 원 가까운 예산을 쓰는 것은 헌법이 금지하는 ‘세습’에 해당한다”면서 “단지 위원회 규정만으로 수당을 지급하는 것도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이북5도 관련 인원 현황


위원회가 스스로 밝히는 존재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이북5도 분야별 정보 수집·분석
  • 북한지역 수복 시 실시할 제반 정책 연구
  • 이북5도민 및 관련 단체 지원·관리
  • 북한 이탈 주민 및 이북도민 후계세대 육성·지원
  • 이북5도 향토문화 계승·발전

하지만 실제 활동은 명분과 거리가 너무 멀다. 정보수집이나 정책연구는 통일부나 법무부 등이 하고 있으며 위원회는 관련 예산을 책정조차 하지 않았다.

실제 위원회 예산사업설명서가 자체 사업으로 꼽은 것은 북한이탈주민지원사업(6억 8100만원), 청사시설개보수(1억 5300만원), 이북도민체육대회와 연합회 지원사업(11억 500만원) 세가지 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인건비와 운영비다. 한마디로 말해서 조직 운영을 위한 조직운영을 하고 있는 셈이다(주 4).


주간일정조차 없어, 특혜 지적 받아도 할 말 없다

후계세대 육성·지원도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김 사무국장 스스로 “북한 이탈 주민 관련 업무는 통일부 산하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 하고 우리는 월남민 1세대와 탈북자 자매결연 사업 위주”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귀옥 한성대 교수는 “60년 전에 고향을 떠난 월남민과 북한 이탈 주민, 그것도 나이 차이가 수십 년이기 때문에 사실상 갈등만 깊어진다”면서 “탈북자를 월남민과 연결해 주는 건 오히려 한국 정착에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남는 건 연합회 지원과 월남민과 자녀세대 지원, 향토문화 계승·발전뿐이다. 향토문화 계승·발전을 연합회가 하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결국 민간단체 지원 차원에서 연합회 지원을 해주면 될 뿐 위원회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북5도위원회는 이북5도 도지사들로 이루어지며 이를 위한 사무처가 이북5도청이다. 이북5도위원장은 윤번제로 도지사 가운데 1명이 맡는다. 현재 위원장은 박연용(73) 황해도지사이며, 김정겸 황해도 사무국장이 위원회 사무국장을 겸임한다. 평남·평북·함북 위원장은 모두 지난해 9월 임명됐다. 선정위원회 같은 별도 절차 없이 청와대에서 낙점하기 때문에 논공행상 차원에서 이뤄지는 게 수십 년 된 관행이라고 안행부 관계자는 귀띔했다.

할 일 없는 북한도지사들, 연봉은 1억 이상

도지사들은 차관급 별정직 공무원이다. 1년 보수로 지난해 기준 1억 660만 5,000원을 받았다. 박 위원장은 지난해 업무추진비로 2,072만 6,800원, 황덕호 함남지사는 2,788만 4,142원을 썼다. 5도지사를 합하면 연간 6억 원이 넘는 액수다. 거기다 각자 운전기사와 관용차, 비서도 둔다. 한 안행부 관계자는 “차관급 대접을 받지만 변변한 주간일정조차 없을 정도로 할 일이 없다고 보면 된다”면서 “특혜라는 지적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고 인정했다.



  5도도지사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살펴봤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 따르면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은 식사비가 대부분이며, 기념품 구입과 축화환 구입등이 있다. 이북5도지사들이 2013년에 카드집행이 아닌 세금계산서나 계좌이체 방식으로 집행한 건은 총 20건, 2500여만원으로 주로 격려품 구입 명목이었다. 17차례 약 728만원은 업무추진비를 주말에 집행했다. 모두 정부 예산집행지침을 위반한 것이다. 위원회는 2012년에도 자체감사에서 동일한 사항을 지적받았지만 전혀 시정이 되지 않은 셈이다. 

(관련 글:정보공개센터 – 함경남도 도지사는 업무추진비로 얼마나 썼을까?) 


이북5도위원회 뿌리는 서북청년단

  이북5도위원회가 밝히는 위원회 뿌리는 1946년 민간단체였던 5도민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직후인 1949년 2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이 이북5도지사를 임명하고 5월 23일 이북5도청이 문을 열면서 공공기관이 됐다.


취지는 “이북5도에 대한 국토관념을 명확히 하고 언제가는 기필코 달성하고야 말 실지회복에 대한 통일의지를 표명하기 위해”서였다. 실향민 원적발급을 보증해주는 등 정부기능을 일부 수행했지만 법률적 근거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다. 법적 근거가 생긴 건 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이북5도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공포하면서부터다. 


이북5도위원회 조직. 위원장은 윤번제로 맡음 (2014년 위원장은 황해도지사). 도지사는 정무직(차관급). (출처: 홈페이지)


  한성대 교양학부 교수 김귀옥은 "이북5도위원회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서북청년단과 만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해방 직후 월남한 개신교계 청년들이 결성한 서북청년단(약칭 서청)은 제주 4·3사건 등에서 잔혹한 백색테러로 악명을 떨쳤던 극우조직이었다.(관련 글:위키백과 – 서북청년회)


  월남민들을 대외적으로 대표하는 연합회와 그 연합회와 사실상 한 몸인 위원회는 정권과 긴밀하게 움직였다. 5·16쿠데타 직후에 이북5도위원회를 합법화해준 것이나, 1967년부터 명예 시장·군수에게 수당을 지급하고 1970년부터는 명예 읍면장에게 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한 것에서 보듯 정권을 월남민들에게 계속 당근을 제시했다. 


월남민에 대한 특혜가 관행으로 굳어져

  1993년 완공된 이북5도청사는 그 결정판이다. 서울 구기동에 있는 이북5도청사 건립 배경에는 1988년 대선 당시 이북5도위원회와 인적구성이 겹치는 이북5도민중앙연합회가 노태우 후보와 맺었던 뒷거래를 알아야 한다. 이들은 노 후보를 조직적으로 지원해줬고 노 후보는 대통령이 된 뒤 이북5도청사 건립, 임진각 통일전망대 운영권, 월남민 공원묘지 경모공원 설립, 동화은행 설립 등 특혜로 답했다.


사진출처= 서울신문 손형준 기자

 

 당시 월남민과 노 후보 중간에서 다리를 놓은 건 당시 황해도민회장이었던 홍성철씨였다. 그는 노 후보 선거운동에 앞장섰고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이 됐다. 우연의 일치인지 노 전 대통령 재임 5년 동안 이북출신 국무총리는 강영훈(평북 창성, 88.12-90.12), 정원식(황해 재령, 91.7-92.10), 현승종(평남 강서, 92.10-93.2) 등 3명(3년 7개월)이나 됐다.


  1997년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지만 김대중 후보가 당선됐다. 마침 외환위기 여파로 동화은행도 퇴출됐다. 이북5도위원회에선 조직 자체가 폐지될지 모른다며 불안감이 높았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이북5도민연합회에 처음으로 정기적인 지원금을 지원하기 시작하는 등 유화책을 폈다. 그 관행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북5도민중앙연합회 소속 7개 도민회(경기, 강원, 황해, 평안남북, 함경남북)와 산하단체 등은 청사 입주 뒤 임대료를 전혀 내지 않았다. 임대계약서조차 쓰지 않았다. 행정자치부(현 안전행정부)는 임대료 미납 문제가 불거지자 2005년 법을 개정해 “이북5도민 관련단체에 대하여 이북5도위원회에서 관리하는 재산을 무상으로 사용하게 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해 면죄부를 줬다.


  위원회의 근간은 월남민이다. 전쟁이 끝난 해인 1953년 이후로는 대규모 월남민은 없었다는 걸 생각한다면 이북에서 태어난 월남민은 나이를 아무리 적게 작아도 60세가 된다. 고향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는 월남민은 이미 70대가 넘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자녀세대 이후는 월남민으로서 정체성이 거의 없다. 거기다 부모 고향 한 번 가보지 않은 상태에선 연결고리가 더 약해지는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고령화로 인한 자연감소를 감안하면 정치세력으로서 의미가 급속히 약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위원회는 “거대한 시대착오와 자기모순”이라는 꿈 속에서 “외롭게 죽어가는” 존재가 된 셈이다. 


이북5도예산 (단위: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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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세출예산 
총액
전체 중 
이북5도민연합회 지원
전체 중 
명예 시장,군수 등 수당
200453억 4739만9억 6111만10억 708만
200558억 2162만9억 7111만9억 9994만
200662억 7472만9억 8751만11억 2089만
200766억 7800만9억 8700만자료 부존재
200873억 8795만11억 6620만10억 9896만
200968억 5300만12억 2647만10억 9902만
201073억 621만11억 7647만13억 6540만
201159억 3939만11억 7647만17억 8634만
201285억 7223만11억 5937만18억 1798만
201389억 5880만12억 2800만18억 2537만
201486억 3748만11억 692만18억 1323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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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 2014년 이북5도 관련 예산 금액


 <김귀옥 교수 인터뷰>

"정부가 북한을 무력으로 점령할 생각이 아니라면 망명정부를 상정하는 조직이 정부기관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북한에게 빌미만 줄 뿐입니다. 월남민 정책이 수십년전 인식에 갇혀 있다보니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는 겁니다. 이북5도민중앙연합회(이하 연합회) 지원은 전통문화 계승이라는 맥락에서 접근하고 이북5도위원회는 해산하는 게 상식적인 해법입니다”


  한성대 교양학부 교수 김귀옥은 인터뷰에서 “현재 월남민들은 극소수를 빼고는 세력으로서 의미를 상실했다”면서 “냉정하게 말하면 연합회와 이북5도위원회 모두 친목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꼬집었다.

 김귀옥은 “이북지역 향토문화 보존과 무형문화 계승, 구술작업 등 문화센터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그에 맞는 지원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장기간에 걸친 현지조사를 토대로 한 이북 실향민 연구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줄곧 분단과 월남민, 탈북자 등 연구를 진행해왔다.

  이북5도민위원회가 자기 존재의의로 내세우는 것 가운데 하나가 ‘850만 이북도민’이다. 이는 1970년 가호적 취득 당시 자신을 이북5도민 출신으로 신청한 546만명에 지난 40여년간 총인구증가율 55.55%을 그대로 적용한 수치다. 하지만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사망률도 감안하지 않은 소설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김귀옥은 그간 연구를 토대로 한국전쟁 전후 월남민을 100~120만명으로 추정한 뒤, “1994년 무렵 정부가 내놓은 추정치가 약 40만명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박정희 정권이 정확한 월남민 규모를 조사하려다 반발에 부딪쳐 계획을 취소한 적도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공통 경험을 공유하지 못하는 월남민 2세대부터는 월남민으로서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월남민이라는 집단을 “반공전사 아니면 빨갱이”라는 식으로 통째로 낙인찍는 이분법을 버려야 진면목을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월남민을 엘리트 출신과 일반인으로 구별한 뒤 학력, 반공에 대한 자기 보증, 군경력 입증 등을 기준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면서 “한국에서 엘리트집단에 성공적으로 편입한 건 바로 위 세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월남민이었다”고 밝혔다.


  1. 이 글은 애초 시민의신문에서 2005년 1월 썼던 기획기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취재한 내용을 담아 2월15일자 14면 서울신문에 보도를 했다. 이 글은 서울신문 기사를 수정보완한 것임을 밝힌다. [본문으로]
  2. 기사가 나온 뒤 박모씨 부친한테서 연락이 왔다. 마치 박모씨가 예산낭비 주범이나 되는 것처럼 기사가 나온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였다. 이 글을 빌어 박모씨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으며, 박모씨가 제보자도 아니었고, 박모씨 인터뷰가 기사 시발점도 아니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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