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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2 07:00

2년만에 날개꺾인 이집트 민주혁명


   이집트 과도정부가 7월16일 출범했다. 아들리 만수르 임시 대통령과 하젬 엘베블라위 총리를 비롯한 각료 35명은 이날 카이로 대통령궁에서 각료 취임 선서식을 개최했다. 2년전 이른바 ‘아랍의 봄’으로 30년 군부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보통선거를 통해 취임한 대통령을 군부가 강제로 퇴임시킨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과도정부는 벌써부터 무르시 전 대통령 색까리 지우기에 나섰다. 새 내각은 사실상 여당이었던 무슬림형제단 등 이슬람 계열을 모두 배제했다.(한겨레. 이집트 반쪽짜리 과도 내각 출범) 무슬림형제단 역시 대변인을 통해 “불법적인 정부이고, 불법적인 총리이고, 불법적인 내각”이라며 대립각을 세웠다. 민주화시위 결과가 쿠데타가 되다보니 이슬람주의에 거부감을 갖고 민주화를 지지하는 세속주의 성향 시민들도 딜레마에 빠져있다.(경향신문. ‘민주화 시위 결과가 쿠데타’…이집트 세속주의자, 딜레마 빠져)


   중동의 중심국가라고 할 수 있는 이집트가 또다시 요동친다. 민주선거를 통해 당선된 정부를 무너뜨렸으니 응당 군부쿠데타라 해야할 것 같지만 각국은 이해관계에 따라 해석이 제각각이다. 31년간 집권했던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무너뜨린 중심지도 카이로 타흐리르(해방) 광장이었지만 이번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 반대시위 중심지 역시 타흐리르 광장이었다. 전자가 민주혁명이면 후자도 민주혁명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전자가 민주혁명이라면 후자는 민주혁명을 부정한 반동이라고 해야할까. 혼란스럽게 엉키고 설킨 이집트 상황을 주요 주체를 중심으로 재구성해봤다. 


 

 ○ 이집트 무슬림형제단 

   교사였던 하산 알반나가 1928년 창설한 무슬림형제단은 초기에는 상당히 강경한 무장노선을 견지했지만 1970년대 이후 중도적 입장으로 변화를 시도해왔다. 다양한 풀뿌리활동 등으로 대중적 지지를 확대해간 무슬림형제단은 무소속으로 출마한 2005년 총선에서 86명을 당선시키며 강력한 정치세력으로서 힘을 과시했다. 2011년 민주혁명에선 “정치적으로는 중도적 입장을 견지하고, 사회적으로는 민주화 혁명에 참여하되 적극적인 의사 표현을 자제하고, 종교적으로도 형제단 단원을 동원하지 않았다.”[각주:1] 무슬림형제단은 정교일치를 배격하고 다당제를 주장하면서 2011년 5월 자유정의당을 창당했다. 


   황병하(조선대 아랍어과 교수)는 무슬림형제단이 “현재 이집트 정치와 종교에서 단일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발전을 모색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정치집단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무바라크 정권 중반 이후부터 보여준 역사적 지속성과 사상적 온건성 그리고 사회적 희생정신, 즉 강경노선 철회와 중도적 입장변화 그리고 젊은 온건주의 활동가들의 역할 등으로 인해 이집트의 미래 정치적 대안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아왔다”고 진단했다.[각주:2] 


   2012년 6월 무슬림형제단 대변인 출신인 무함마드 무르시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일각에선 그가 급격한 이슬람화 정책을 펴지나 않을까 우려했다. 초기에는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을 계속 준수하고 2012년 11월에는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충돌을 중재하는 등 실용적인 외교정책으로 기대감을 갖게 하는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대통령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개헌안을 강행하는 등 독주 양상이 시작되면서 갈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결정타는 또다시 경제였다. 민주화혁명의 도화선이 식량값 폭등과 실업문제 등 경제문제였다면 혁명 이후 2년 넘게 계속된 경기침체가 또다시 무르시 정권을 위기에 빠뜨렸다.(이슬람이고 뭐고 이집트는 배고프다)(서울신문. 이집트 사태 '아랍의 봄'과 다른 점은)

 

 ○ 이집트 군부

   이집트에서 군부를 빼놓고는 현대사를 설명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 1953년 ‘자유장교단’ 쿠데타로 왕정을 무너뜨린 뒤 초대 대통령이 된 무하마드 나기브부터 가말 압델 나세르, 안와르 사다트는 물론이고 무바라크 전 대통령까지 무르시 이전까지 모든 최고 권력자가 군부를 기반으로 권력을 쥐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집트에서 군부가 갖는 존재감은 막강하다. 이번 과도정부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은 제1부총리를 겸하기로 했다. 그를 도와 무르시 축출을 주도한 레다 하페즈 중장은 방위산업을 책임지는 방산장관에 임명됐다. 


  군부는 나세르 초대 대통령 당시부터 무슬림형제단과 악연이 깊다. 게다가 반세기 넘게 이어온 기득권을 내려놓을 생각도 없었다. 애초에 2년전 민주혁명도 ‘군부독재’를 겨냥한 것이었다. 무바라크를 희생양삼아 민주주의 수호자로 변신에 성공한 군부는 임시정부를 장악한 뒤 차기정부를 좌지우지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총선 결과 무슬림형제단이 과반수 이상 의석을 획득하자 이를 결제하기 위해 대선 결선투표일을 보름 앞둔 2012년 6월8일 군최고위원회(SCAF)는 헌법재판소로 하여금 “하원의원 3분의 1이 불법 당선됐다”며 의회 해산을 시도한게 대표적이다(이집트의 참으로 이상한 쿠데타). 


  대선 결선투표일을 열흘 앞둔 2012년 6월14일에는 군부가 입법권과 예산감독권을 갖는 초헌법적인 임시 헌법을 발동하기도 했다. 직접선거로 선출할 대통령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군부 의도대로 되지는 않았다. 무르시는 취임 직후 의회를 재소집하고 입법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대통령령을 발령해 군부 의지를 저지했다. 2012년 8월에는 시나이반도 국방수비대 피살사건을 명분삼아 군부 수장인 후세인 탄타위 국방장관과 2인자 사미 아난 참모총장을 전격경질하는 승부수로 군부에 일격을 가했다(이집트의 참으로 이상한 쿠데타). 


  군부는 곧바로 반격하지 않고 기회를 노렸다. 마침내 7월1일 수백만명이 시위를 벌이는 등 무르시 정부가 궁지에 몰리자 드디어 칼날을 드러냈다. 2011년 ‘치안유지를 위해 군이 나설 수밖에 없다’는 명분으로 타도대상에서 혁명 주역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던 군부는 이번에도 노련한 정치력을 과시하며 7월3일 밤 국정을 다시 장악하는데 성공했다.(60년 권력 다시 이어가는 이집트 군부)


   이스라엘을 빼고는 중동과 아프리카를 통틀어 최강 전력을 자랑하는 이집트군은 무기뿐 아니라 도로와 주택건설, 소비재, 리조트 경영, 전자제품과 의류 등 각종 사업에도 관여하는 특권집단이다. 미국이 해마다 제공하는 군사원조도 군부를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2014년도 이집트 지원예산안 15.5억달러 가운데 13억달러가 군사원조다. 7월 10일 미국 국방부는 F-16 전투기 4대를 예정대로 이집트에 인도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미국이 여전히 이집트 군부를 지지한다는 것을 과시한 것이다.(시사IN. 쿠데타인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야)


 ○ 여타 아랍국가들

   이집트 정국은 이집트만 들여다봐서는 안된다. 카타르 등 여타 아랍국가들의 동향을 살펴야 한다.(경향신문. 이집트 과도정부 껴안기 주변국 셈법 복잡) 그런 점에서 이집트 상황을 둘러싼 보도가 아랍권 양대 국제방송에서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카타르 왕자가 소유한 알자지라는 무슬림형제단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는 보도를 내보내는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와 가까운 기업인이 소유한 알아라비야는 이집트 군부에 유리한 보도로 일관한다. 두 매체 보도는 한마디로 천지차이다. 알아라비야는 무르시 축출을 ‘두번째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반면 알자지라는 이를 ‘정통성에 대한 쿠데타’라고 규정했다.(연합뉴스. 아랍 양대 위성방송 이집트사태 보도성향 '극과 극')


   홍미정(단국대 GCC 국가연구소 연구교수)에 따르면 카타르는 미디어(알자지라)와 막대한 자금을 활용해 2년전 이집트 민주화시위와 무슬림형제단 정권장악을 측면지원했다. 무르시가 집권하는 동안 무슬림형제단에 지원한 자금만 80억달러나 될 정도다. 홍미정은 “그동안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 쿠웨이트 등은 자국 내 정부 반대파인 무슬림형제단의 정치개혁 요구를 경계하면서, 때로는 이들을 체포하는 등 탄압해왔다”면서 “앞으로 카타르는 더 이상 사우디아라비아의 심기를 거스르며, 무슬림형제단을 적극 지원할 것 같지는 않다”고 전망했다.(전환기 이집트 어디로 갈 것인가)

 

   카타르를 대신해 이집트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다. 사우디아라비아는 7월9일 이집트 과도정부에 50억달러에 이르는 원조를 승인했다. 여기에 더해 사우다아라비아와 보조를 맞추는 아랍에미리트가 같은 날 30억달러를, 10일에는 쿠웨이트가 40억달러 원조를 약속했다. 현재 이집트는 2014년 6월까지 빚과 54억 달러의 무역 적자를 해결하기 위하여 약 195억 달러를 필요로 한다고 한다. 

 

 ○ 미국

   20세기 이후 미국이 중동에서 추구하는 핵심 정책목표는 예나 지금이나 지역안정이다. 급격한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 여기에는 민주화시위도 포함돼 있다. 군사독재정권이라 해도 정치만 안정돼 있다면 상관없다. 덕분에 무바라크 정권은 30년이나 장기집권할 수 있었다. 현재 이집트 정세를 대하는 미국의 태도도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한편으론 군부 쿠데타를 쿠데타로 규정하지 않고, 다른 한편으론 무슬림형제단 지도자들을 만나 향후 전개될 새 정치 과정에 참여하라고 설득중이다. 


   미국은 무슬림형제단을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근거지로 간주하는 시각을 견지한다. 무슬림형제단 소속 대통령이 들어선 이후 미국이 보인 행태는 이집트 역사상 최초로 국민들이 직접선거로 뽑은 대통령과 정부를 무너뜨리고 합리화하는 원동력이 됐다. ‘알자지라’ 7월10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는 매년 여러 단계를 거쳐 이집트에 있는 특정 조직과 단체에 수억달러를 지원해 친서방 인사를 길러냈다. 이들 상당수가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한 세력에 속해 있다. 가령 반무르시 세력 연합체인 구국전선 소속 인사들도 미국 정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한겨레. 이집트 반무르시 세력 배후엔…역시 미국이)


   미국 정부는 무르시 정부가 위기에 몰리자 더 직접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자리는 지키되 권한을 내놓는’ 타협안으로 무르시를 계속 압박했다. 3일 오후 무르시는 한 아랍국가 외무장관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이 외무장관은 자신이 미국 정부의 특사라며, 새로운 총리와 내각에게 실권을 넘기라고 요구했다. 무르시가 ‘쿠데타를 용인해서 이집트 민주주의에 타격을 주기보다는 이대로 죽겠다’며 거부했다. 외교보좌관은 이집트 주재 미국대사와 백악관 안보보좌관에게 이 사실을 알리며 군부가 막 권력접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몇시간 뒤 군부가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헌정 중단과 무르시 해임을 발표했다.(한겨레. 무르시의 마지막 미국이 결정했다)



 

  1. 김종도·박현도 엮음 (2012). [아랍 민주주의, 어디로 가나?]. 서울: 모시는사람들. 107~108쪽. [본문으로]
  2. 김종도·박현도 엮음 (2012). [아랍 민주주의, 어디로 가나?]. 서울: 모시는사람들, 108~109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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