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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9 16:55

터키 시위 사태, 2008년 촛불집회 데자뷰


  시작은 얼핏 사소해 보이는 환경 관련 시위였다. 528일 탁심 연대라는 시민단체 회원과 시민 20여명이 터키 이스탄불 중심가에 위치한 탁심 광장에 모였다숲을 지키기 위해서였다정부가 광장 인근에 있는 게지 공원에 호텔과 백화점박물관 등을 결합한 복합 쇼핑몰을 지으려는 재개발 계획에 반대하며 정부가 공원을 없애고 그 위에 쇼핑센터를 세우려 하는 것은 공공 자원을 사유화하는 것이라고 외쳤다


  이틀 뒤 경찰은 이들이 농성을 벌이던 천막에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강제로 해산시키려 했다그 때부터 탁심 광장과 터키 시위는 전세계 이목을 집중시키는 대규모 시위 중심지가 돼 버렸다공원 재개발 반대 시위는 이제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와 집권 정의개발당을 규탄하는 반정부시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점거시위가 계속되자 에르도안 총리는 15일 하루 말미를 줄테니 게지 공원에서 나가라고 시위대에 최후 통첩을 했다그리고 두 시간도 안된 15일 밤부터 경찰은 고무총과 최루탄물대포를 쏘며 시위대 진압에 나섰다이스탄불의 유럽 쪽에 있는 탁심광장으로 진출하려고 아시아 쪽에서 보스포러스 대교를 건너려던 시위대를 최루탄과 물대포로 저지하는 등 이스탄불 시내 곳곳에서는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격렬한 충돌이 일어났다상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터키 노동조합연대는 17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탁심 광장 전역을 장악한 정부는 강력한 태도를 보였다에게멘 바이시 유럽연합(EU) 담당 장관은 전날 터키 방송국 에이하베르와 인터뷰에서 경찰이 진입을 차단한 탁심광장에 시위대를 지지하러 간다면 테러 집단을 지지하는 것으로 간주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휴세인 무틀루 이스탄불 주지사는 1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재 상황에서 탁심광장 집회를 허용하지 않겠다상황이 안정된 이후 그들(시위대)은 민주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집권 15일에는 앙카라 교외 신잔에서, 16일에는 이스탄불 교외 카즐르체시메 광장에서 각각 수만명이 참가한 대규모 정부 지지 집회를 개최해 세를 과시했다.


상황은 일단 ‘공식적으로는’ 종료된 듯 하다. 혁명적노동조합총연맹(DISK)과 공공노조연맹(KESK)은 17일 총파업을 예고했지만 이날 오후 앙카라 도심에 모여 시위를 벌인건 조합원 1000여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경찰이 막는 바람에 변변한 거리행진도 못했다고 한다. 에르도안 총리는 기세가 올랐다. 외신에 따르면 그는 18일 한 연설에서 “우리 민주주의가 다시 시험을 받았지만 결국 이겨냈다”며 “승리했다”고 자평했다. 그는 “반역자들과 외국 공모자들이 시도한 음모를 분쇄했다. 이제부터 경찰력을 강화해 폭력행위에 연루된 사람이나 조직은 어떤 관용도 보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시위 주동자 수십명이 자택에서 대테러 담당 경찰특공대에 체포됐다. 





터키 시위사태는 '아랍의 봄'과 다르다

  분명히 해 둬야 할 점이 있다터키는 중동을 통틀어 가장 민주주의가 발달한 국가 가운데 하나다현 시위 사태를 단순히 2년 전 아랍의 봄과 동일시하는 건 너무 성급하다집권 정의개발당은 2003년부터 민주적인 선거를 거쳐 집권중이다에르도안 총리는 여전히 50% 넘는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그렇다고 시위대가 철부지들이 벌이는 단순 폭동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시위대에는 세속주의자이면서도 총리에 반대하진 않는 이들이 존재하고 거기다 공산주의자심지어 온건파까지 다양한 계층이 뒤섞여 있다.


  갈등이 첨예한 사안에서는 어느 한쪽 얘기만 들어서는 진상을 파악할 수 없다터키 시위 사태 역시 마찬가지다최근 서울신문에는 두 해석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기고가 있었다하나는 첫 한국주재 터키 특파원인 알파고 시나시였고 다른 하나는 오종진 한국외대 터키-아제르바이잔학과 교수다알파고 시나시는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뒤 현재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다오종진은 터키에서 석사를 받는 등 터키 상황에 능통하다.


  알파고 시나시는 먼저 현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들이 환경시위를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숲을 살리자는 취지도 좋았고 시위도 평화롭게 진행돼 초기에는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많았다하지만 일부 정치 세력들이 이런 상황을 이용하면서 시위가 본래 목적을 잃고 과격해졌다극좌 집단들이 시위에 참가했고나중에는 에르게네콘’(요인 암살 등을 통해 현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비밀 네트워크)을 지지하는 사람들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터키는 선거를 통해 정권을 선택해 온 민주주의 국가라면서 탁심 사태는 2011년 영국 런던 시위처럼 일부 과격분자들의 폭동으로 보는 게 정확하다고 강조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0614019015&spage=1


  오종진은 터키 시위를 아랍의 봄과 같은 민주화 시위로 볼 수 없다는 의견에 동의한다고 인정한다. “터키는 다른 아랍 지역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높은 민주화 의식을 가진 국가이기 때문이다그는 오히려 현 상황을 한국에서 2008년 쇠고기 수입 재개를 놓고 벌어졌던 대규모 촛불시위와 유사성에 주목한다그가 말하는 내용은 최근 시위대의 전반적인 구성을 보여준 외신 보도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터키 일간 휴리예트 7일 기사를 인용한 연합뉴스 보도를 보면 시위대는 한마디로 젊고자유주의 성향이며 총리에 화났다로 요약할 수 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0614019016&spage=1


  터키 이스탄불 빌기대학 에스라 빌기치 교수가 지난 3~4일 시위 참석자 3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에서 설문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0%는 어떤 정당과도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답했다특정 정당을 지지한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15.3%였고 자신이 가입한 정당에 영향을 받아 시위 현장에 나왔다는 응답은 7%에 불과했다반면 에르도안 총리가 보여준 독선적인 태도 때문에 시위에 참여했느냐는 질문에는 92.4%, 경찰의 과잉진압이 시위 참여에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는 91.3%가 그렇다고 답했다경찰이 진압을 중단해야 한다는 답변은 96.7%였고 군부가 쿠데타로 이번 사태에 개입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응답도 79.0%였다. 81.2%는 자신을 자유주의자로 인식했고 64.5%는 세속주의를 지지했다.

 

특별한 시위 지도부가 없이 자율적으로 시위가 진행됐다는 것도 시위사태의 배경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대목이다. 시위를 계기로 국제적으로 유명해진 탁심 연대도 사실 1980년대부터 결성된 시민단체와 직능단체의 연합에 불과하다. 의사결정도 지침이 아니라 동등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느슨한 연대체’ 특징을 보인다. 조직화된 집단이 아니라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발적으로 참가한 시민들에 의존하는 시위방식은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많다. 무엇보다 정부가 귀를 막고 막가파식으로 대응하겠다고 마음 먹는 순간 대응할 방도가 마땅치 않다. 제도정치와 제대로 연결되지도 않았다. 2008년 한국을 달군 촛불집회와 여러모로 겹치는 모습이다.


사태 해결 열쇠는 에르도안에게 있다

  터키 국민 가운데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은 99.8%하지만 헌법이 인정하는 정식 국교는 없다터키는 이슬람국가가 아닌 세속국가그것이 터키가 다른 중동 국가들과 구별되는 특징이자현대 터키 정치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지금도 터키인들이 국부’(國父아타튀르크)로 추앙하는 무스타파 케말 초대 대통령은 1928년 헌법에서 이슬람교를 국교로 한다는 조항을 삭제했다무스타파 케말은 강력한 정교분리를 통해 터키를 유럽처럼 근대적인 강대국으로 만들고 싶어했다그리고 군부는 오랫동안 세속주의 수호자를 자처했고 세속주의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여러 차례 쿠데타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에르도안 총리와 정의개발당은 집권 이후 줄곧 군부와 갈등관계를 계속해 왔다그것은 군부 입장에선 정의개발당이 세속주의를 버리고 이슬람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정의개발당 입장에선 세속주의를 명분으로 군부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서로 충돌하기 때문이다실제 정의개발당은 과거 군부 영향 아래 있는 헌법재판소 판결로 정당해산 결정을 받아 당명을 바꾸고 재창당해야 하는 수모를 여러 차례 겪었다집권 이후에도 정당 해체 위기를 가까스로 넘긴 적이 있을 정도다반면 정의개발당 집권 이후에는 쿠데타와 음모와 사조직 결성 등으로 대규모 군부 숙청 작업이 여러 차례 계속됐다.


  세속주의를 지지하는 핵심은 군부와 도시 중산층법조계 등이다터키 사회 지도층에선 세속주의가 강하지만 전체 인구로 보면 일부에 불과하다반면 정의개발당은 농촌특히 동부지역과 이슬람 보수주의자들을 강력한 지지기반으로 한다거칠게 표현하면 세속주의와 서구화의 과실을 누리는 집단과 근대화에서 소외된 집단들이 극명히 갈리는 셈이다정의개발당은 오랜 풀뿌리운동의 성과를 바탕으로 바닥을 다진 끝에 집권에 성공했고 그동안 경제성장을 통해 지지기반을 확고히 다져 왔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정의개발당이 터키식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권위주의화되고 있으며 이것이 시위의 한 배경이라는 점을 지적했다가령 정부는 최근 국민이 먹는 빵 종류에 간섭하고 여성들이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종용하는 등 조치를 취했는데 이는 경제성장 여파로 확산되는 중산층에게 불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거기다 터키 사회에서 상당히 예민한 사안인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라는 문제를 건드린 것도 갈등을 폭발시킨 한 원인이 됐다고 볼 수 있다에르도안 총리는 최근 이스탄불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을 이슬람 사원으로 바꾸려다 실패했다낮 시간대 술 판매금지 법안은 의회에서 통과됐다수도 앙카라에서는 키스를 자제해달라는 지하철 안내 방송에 반발한 시민들이 일부러 지하철역 앞에서 키스를 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터키와 국제사회에서는 에르도안 총리가 2014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통해 장기집권의 토대를 구축해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일각에선 에르도안이 술탄’(과거 터키의 황제)이 되려 한다고 보기도 한다갈수록 강해지는 권위주의 통치방식과 압도적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한 다수결 정치시위에 대처하는 경직된 자세는 이번 터키 시위 사태가 간단히 끝날 문제가 아니며설령 진압에 성공하더라도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이들이 민주주의 정신에 충실하게 대처할 것인가 시위 사태를 '폭동'으로만 치부하며 반대파를 몰아내는데만 몰두할 것인가결국 열쇠는 에르도안 총리와 집권 정의개발당에게 있는 셈이다.


17일부터 탁심 광장에는 특이한 저항이 시작됐다. 처음엔 한 행위예술가가 시작했는데 트위터 등을 통해 순식간에 확산되면서 18일에는 광장에 수천명이 모여들었다. 구호도 없고 플랭카드나 유인물도 없다. 연합뉴스는 현지 르포기사에서 탁심광장에 모인 시민들 모습을 “발밑에 가방과 생수병을 내려놓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건너편 아타튀르크문화관에 걸린 터키 국기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고 묘사했다. 한마디로 철저한 침묵시위다. 에르도안 총리는 시위진압을 “승리”라고 표현했지만 그는 어쩌면 너무 일찍 김칫국을 마신 건지도 모르겠다.






이 글은 슬로우뉴스(http://slownews.kr/11522)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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