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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0 15:21

미국만 바라보는 지식생태계, 미국만 생각하는 지식권력


2012년 7월 19일 국제교류재단이 주최한 국제심포지엄 '21세기 공공외교의 새로운 지평'에서 발표한 토론문을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몽골은 우리나라 동쪽에 있을까, 서쪽에 있을까? 넌센스 퀴즈도 아니고 시답잖은 질문 같지만 어떤 교수가 학술행사에서 "몽골은 우리나라 동쪽에 있다."는 말을 버젓이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한국은 아니고 1960년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세칭 북한학자였는데, 이 분은 러시아 책에 나오는 내용을 아무 생각 없이 가져다 쓰다 얼토당토않은 실수를 저질렀다. 15년도 더 전에 어떤 재미교포가 쓴 책에서 본 구절이다.

그렇다면 그때 이후 50년이 지난 21세기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2010년 기준으로 한국은 법인세 최고세율이 24.2%에 불과하지만, 미국은 39.2%나 된다. 영국은 28%이고 OECD평균도 25.91%로 한국보다 높다(참고:
 '법인세 인하가 국제적 추세'라는 억지 혹은 코미디). 실효세율을 몇 퍼센트 포인트나 깍아 먹는 온갖 비과세감면은 논외로 치더라도 한국 법인세 수준은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에선 “한국의 법인세 수준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해 너무 높다.”고 주장하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용감한(?) 경제학 박사들이 많은 걸까. 내겐 도저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다. 혹시 “미국 법인세 수준이 너무 높다”는 미국 학자들의 발표를 그대로 가져다가 얘기하다 보니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주요국의 법인세 최고세율 변화추이 (출처: 새로운사회를위한연구원)

국외 박사 50% 이상이 미국서 학위 취득


7월19일 국제교류재단이 주최하는 국제심포지엄 '21세기 공공외교의 새로운 지평'에 참석한 한국인 발표자와 토론자 가운데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은 24명이다. 24명이 각각 어느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는지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다. 미국 박사는 17명, 유럽박사가 3명, 국내 박사는 4명이었다. 미국 박사가 70.8%를 차지한다.

1943년부터 현재까지 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 한국연구재단에 등록된 사람은 전체 3만 9,135명이다. 이 가운데 미국 박사는 2만 2279명으로 전체에서 56.93%를 차지한다. 남성만 놓고 보면 전체 3만 877명 가운데 1만 7,900명으로 그 비율이 57.98%로 늘어난다. 두 번째로 많은 외국 박사를 받아온 일본보다 세 배가 훨씬 넘는 수치다.




[표1] 수여국별 박사학위 통계(1943~2012)




이런 추세는 시기에 따라 별반 다르지 않고 일관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80년부터 1999년까지 추세를 보더라도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2만 478명 가운데 미국 박사가 1만 2,284명으로 59.99%를 기록했다. 영어권 비중이 늘어나고 중국 박사가 급증했으며 일본이 퇴조하고 있다는 흐름 역시 어느 정도 예상과 다르지 않다.




[표2] 수여국별 박사학위 통계(2000~2012)



여기서 우리는 한국이 ‘지식’을 통한 외교를 할 수 있는 토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쌍방향 ‘외교’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국내에서부터 다양성이 보장되는 지식생태계를 통한 지식생산이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것 자체를 제약하는 심각한 걸림돌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하나는 수여국별 유학생 자체가 대단히 편중돼 있어서 다양한 지식생태계를 구축하는데 장애요인이 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미국에서 공부한 이들이 한국에서 분명한 지식독점을 형성하면서 대안 담론 활성화를 제약한다는 점이다.



장하준이 삼류라는 미국화된 지식권력


장하준이 말한 바로는 1987년부터 1995년 사이에 미국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8040명 가운데 한국인 이름을 가진 경우가 776명으로 비율이 10% 가까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 인구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도 안된다. 1970년대 이후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이들은 하이에크나 프리드먼 같은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이들이 중심이 된 경제기획원은 1980년대 이후 자유시장경제를 위해 경제기획원을 해체해야 한다고 앞장서 주장했을 정도였다.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이들이 신자유주의의 인식론인 인간을 ‘경제적 동물’로 보는 인식론이나 ‘공무원의 지대추구’ 가설조차 배신하는 무척이나 얄궂은 경우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미국 유학파들이 경제관료집단과 학계에서 주류가 된 것은 한국 사회를 급격히 신자유주의 사회로 재편하는 원동력이 됐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 우리나라 국책연구기관은 미국 박사가 아니면 거의 천연기념물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됐다. 한국개발연구원은 박사 총인원 54명 가운데 미국 박사가 50명이고, 조세연구원은 30명 중 28명, 한국금융연구원은 32명 중 30명이다. 당장 내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대학원만 해도 교수 15명 전원이 미국 박사다.

이런 편중성은 그 자체로 다양한 시각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며 지구적 관점에서 거시적으로 현안에 접근하는 전문성을 약화시킨다.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인 장하준이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임용에 세 번이나 떨어지고
 “삼류 잡지 에디터” 소리를 들은 건 위에서 열거한 사실과 과연 아무런 연관이 없을까.



임용에 박사 취득 대학별,국가별 쿼터 도입하자


과연 우리는 세계무대에서 지식을 생산하길 원하는 것일까? 미국 지식권력이 손가락을 들어 달을 가리키면 한국의 지식권력은 그 달(혹은 손가락)을 쳐다보기에 바빴다고 하면 지나치게 가혹한 평가일까. 이제는 미국 지식권력이 달을 가리키면 ‘왜 지금 달을 가리키는지’ ‘왜 하필 저 달을 가리키는지’ 같은 문제부터 따지고 들어가지 않는 한 ‘쌍방향 지식 외교’는 요원해 보인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생각나는 ‘상대적으로’ 현실성이 높은 제안을 하나 하려 한다. 그것은 바로 국책 연구기관이나 국공립대학부터 연구원이나 교수를 임용할 때 박사학위를 받은 대학과 국가별로 쿼터를 두자는 것이다.

가령 특정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이나 특정 국가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이 50%를 넘으면 안 된다는 의무규정을 둔다고 해 보자. 그럼 현실적으로 한국을 포함해 어떤 국가 출신 학위자도 절반 이상을 차지할 수 없다. 그럼 서울대나 연고대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도 절대 과반수를 차지할 수 없게 된다. 한국에서 학위 받은 사람도 해당하니 스크린쿼터 같은 논란에서도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런 제도를 시행한다면 서울대와 미국이라는 지식 독점을 깨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외국 유학파라 하더라도 다양한 국가 출신들을 임용할 수 있으니 신자유주의자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경쟁도 촉진할 수 있다. 국내 대학 출신도 임용에 유리해지니 자연스럽게 국내 대학원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20711 국제교류재단 심포지엄(120719) 토론문.hwp



2013.03.20. 오후 2시쯤 보완


교수신문에 굉장히 인상적인 기사가 실렸다. 핵심 내용은 이렇다. 


국내 상위 대학 출신에 국내 상위 대학 박사 학위자보다 국내 하위 대학 출신에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미국 대학 박사 학위자가 우대받는다. 여러 해 전 유학을 앞둔 서울대 사회학과 대학원생한테 들은 얘기가 딱 진실이었다. 그는 서울대 사회과학계에 만연한 풍토를 이렇게 꼬집었다.  "서울대 졸업해서 미국 명문에서 박사학위받으면 성골, 서울대 나와서 미국 비명문에서 박사학위받으면 진골, 학부부터 박사까지 서울대 나오면 6두품..." 


이 기사를 보니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신정철이란 분이 이런 지적을 했다. “우리나라처럼 해외 박사 비중이 높은 곳이 없다. 국내에서 우수하게 교육을 받은 인력이 ‘국내 박사’ 출신이라는 이유로 홀대를 받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학문후속세대 양성 지원과 대학원 교육의 질적 개선 노력은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이 학과에는 교수가 22명이 있다. 미국인 한 명을 뺀 21명 중 신정철 교수를 포함한 19명이 미국에서 박사를 받았다. 국내박사는 두 명인데 서울대와 이화여대다. 교수신문에서 인용한 논문의 적실성을 잘 보여주지 않나 싶다. 뭐 내가 다니는 대학원에서도 교수 15명 전원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6821


그러고보니 예전에 대학원 후배한테서 이런 얘길 들은 적이 있다.


대학원 같이 다니던 친구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박사과정을 수료까지 했는데 박사과정을 미국에서 배우러 갔다. 환송회가 열렸다. 대학원장이 그 친구와 러브샷을 하며 격려해줬다. 


"지금은 스승과 제자로 만나지만 학위받고 돌아와서는 동료교수로 다시 만나자." 


그날 유학을 가지 못해 국내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은 환송회 장소를 잡고 15명이나 되는 교수들에게 일일이 연락하고 참석여부를 확인하고 혹시 자리가 불편하지나 않을까 신경쓰며 교수님 말씀 한마디 한마디 귀 쫑긋세우며 들었다. 덕분에 대학원장이 정겹고 나지막하게 얘기했을 격려말씀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으리라. 


그 자리에 있던 석사과정 대학원생들이 박사과정 대학원생에게 물었다. "우리도 석사받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유학가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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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7.22 10:29 address edit & del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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