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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6 22:18

엉터리 번역이 망쳐놓은 추천도서② <아젠다 세팅>


 "신문은 그날의 아젠다가 가진 상대적 현저성을 알리는 수많은 '암시(cue)' 활용해 대중과 소통한다. 1면인지, 상단인지 하단인지, 헤드라인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심지어 기사의 길이도 신문이 제시하는 아젠다의 현저성 정도를 암시한다(McCombs, 2012: 19)."

"아젠다 세팅은 언론의 영향력이 전지전능하다는 탄환이론 또는 피하주사 이론으로의 회귀가 아니다. 또한 수용자 구성원들을 언론에 의해 프로그래밍되기를 기다리는 '오토마톤(automaton, 자동로봇)'으로 간주하는 이론도 아니다. 아젠다 세팅은 아젠다를 설정하는 언론의 주요한 역할을 인정한다는 이론이다(McCombs, 2012: 27)."

2009년 당시 언론재단 연구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각주:1] 내가 맡은 일은 대외경제정책 보도에 대해 언론계와 전문가 경제계 등 인사들을 심층인터뷰하는 것이었다. 당시 질문 중에 '더 나은 대외경제정책 보도를 위해 언론에 바라는점이 무엇인가'란게 있었는데 대체로 두 가지 대답으로 확연하게 갈리는 게 무척 흥미로웠다.

한쪽에선 '언론이 정부 정책만 받아쓰거나 있는 사실만 전달하는데 그치지 말고 맥락을 짚어달라, 기획을 많이 해달라'는 것이었다. 반면 다른 한쪽에선 '객관성 있는 보도를 해달라'는 주문을 내놨는데 말인즉슨 '있는 사실이나 잘 써달라'는 것이었다.

특이한 것은 정부의 대외경제정책에 비판적인 송기호 변호사나 이해영 교수 같은 이들이 '맥락'을 강조하는 반면, 정인교 교수나 전경련 관계자 등 대외경제정책을 옹호하는 이들이 '객관성'을 강조하더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실 정책을 재구성하는 이들은 객관성에 불만을 갖고 재구성 필요를 못느끼는 이들은 객관성을 더 요구한다.[각주:2] 

  개인적으로 언론계에 있다보니 언론의
사명은 '있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할 '이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 편이다. 언론인들이 자주 입에 담는 가운데 하나가 '팩트(fact)'라는 점에서 보듯 많은 언론인들이 '현실에 존재하는 객관적 실체' 지고지선한 가치로서 강조한다. 꼭 언론인이 아니더라도 '언론은 이래야한다'는 얘길 할 때 '객관성'을 강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언론의 객관성 신화'에 대한 불만이 높은 내 생각에 날개를 달아주는 책을 최근 읽었다. 대학원 학우한테 어찌어찌해서 선물받은 <아젠다 세팅>이란 책이다.(맥스웰 맥콤스(McCombs, Maxwell).(2012). 『아젠다 세팅; 당신의 생각을 조종하는 숨은 권력』, 정옥희(옮김), 엘도라도; Setting the Agenda, 2004.)

  의제설정이론은 내 주 관심사 가운데 하나인 프레임이론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물론 의제설정이론은 프레임이론보다는 발화자에 좀 더 주목한다는 인상을 주긴 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요즘 읽고 있는 <프레임은 어떻게 사회를 움직이는가> 서평에서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이 책에서 맥콤스 "언론은 실제 환경에 비해 매우 제한적인 풍경을 제시" 뿐이며 이는 "현대식 건물의 협소한 창문을 통해 바라본 바깥세상만큼이나 제한적"이고 이마저도 "창문 유리가 불투명하고 표면이 고르지 않다면 더욱 그렇다" 꼬집는다(51쪽).

언론이 설정한 의제는 공공의제 형성에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1968 도널드 쇼와 맥스웰 맥콤스는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채플힐 캠퍼스 지역에서 지지후보를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이들이 언론을 활용하는 방법이 선거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분석했다. 이들은 당시 언론이 제기하는 선거쟁점이 유권자들이 생각하는 선거쟁점으로 전이된다는 가설을 세웠다. 실험에서 의제설정이론이 탄생했다(McCombs, 2012).  


미디어가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 등을 통해 중요하다고 보도하는 이슈가 곧 ‘아젠다(의제)’가 되며, 이것이 결국 일반 대중에게도 중요한 아젠다로 전이되는 현상을 말한다. 영향력 있는 미디어에 의해 여론이 조작될 수 있으며, 대중의 심리까지 조작될 수 있는 얘기다. 따라서 새로운 이슈와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생각은 언제나 ‘세팅’될 수밖에 없다. 미디어가 짜놓은 프레임 속에 자신도 모르게 갇히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미디어가 일방적으로 세팅하는 아젠다를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고 판단하는 게 필요하다.

-출판사 보도자료에서



'객관적인 언론'이란 신화를 찢어발기다


의제설정이론이란 바로 '언론이 생각하는 현실' '우리의 생각이 그려내는 현실' 바뀔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 이론의 핵심은 미디어가 그리는 풍경에서 두드러진 요소들이 대중의 그림에서도 두드러지게 된다는 것이다(McMcombs, 2012: 125)."

미디어가
제시하는 의제는 공공의제가 된다. 그리고 언론보도는 각종 현안에 부여하는 우선순위가 대중들이 인지하는 우선순위에 영향을 미친다. 의제설정이론 권위자인 맥콤스(2012: 220) "미디어는 우리가 '무엇을 생각할지' 말해줄 아니라 '무엇에 대해 생각할지' 말해준다" 단언한다. "많은 경우 미디어는 우리의 태도와 의견, 심지어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McCombs, 2012: 228)."  

선거보도를 다룬 연구는 정치와 공공현안에 대한 부정적논조가 강한 신문을 읽는 독자일수록 냉소주의가 강해지는 것을 발견했다. 경제에 대한 부정적 보도는 대중이 경제상황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도록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형성된 부정적 여론은 자기실현 예언이 되어 대중들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경제가 병들었다는 논조는 소비자들을 위축시키고 실제 경제를 병들게 만들수도 있다(McCombs, 2012: 224-225). 

 

  언론보도는 어떤 경우엔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인식을 대중들에게 심어줘 결과적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방향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가령 1990년대 초반 미국 텍사스에서는 범죄발생 통계는 분명히 감소세를 보이고 있었지만 정작 대중들은 범죄를 중요한 당면문제로 인식하는 여론이 확산됐다.

  1992
텍사스 여론조사에서 최대 당면문제를 묻는 질문에 범죄라고 응답한 경우는 2% 불과했지만 1993 가을에는 15%, 1994 상빈가에는 차례나 35% 넘어섰다. 이는 당시 범죄를 다룬 기사량이 증가한 것이 그대로 여론에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McCombs(2012: 57-59) 설명한다.

  1985
뉴욕타임스가 마약문제를 다룬 기획기사를 집중보도하고 미국 전역에서 관련 기사가 급증하면서 마약 문제가 주요한 국가적 의제로 떠오른 것도 중요한 사례로 있다. 1989 9 여론조사에서 63% 되는 응답자가 미국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마약을 꼽았다. 하지만 비율은 1년만에 9% 추락했다(McCombs, 2012: 56-57). 

 
의제설정 주도하는 언론을 주도하는 언론이 있다


  공공
의제를 설정하는데 막강한 영향력을 갖는 언론 중에서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하는 언론이 있다. 미국에서는 주로 뉴욕타임스가 미디어들 사이에서 의제를 설정하는 구실을 한다. 숙련된 신문과 TV 편집자들을 대상으로 실험에서 이들이 선택한 기사와 AP통신이 생산한 기사 사이에서 높은 일치도가 나타났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이는 언론인들이 언제나 다른 매체가 보도한 기사와 현안을 다루는 방식을 서로 관찰하고 비교하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이런 과정에서 특정 매체가 언론사들 사이에서도 의제를 주도하는 경향이 생기고, 그와 별도로 어떤 매체에 등장한 특정 기사가 제시하는 방향이 여타 매체에 그대로 이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반복 과정을 거쳐 언론이 제시하는 의제는 균일성이 높아진다(McCombs, 2012: 200-209).


2012
동아일보 특정 언론이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병역비리 괴담을 적극적으로 보도하고 의혹을 제기한 문제가 급격히 공론화되고 거의 모든 언론에서 문제를 보도하기 위한 과열경쟁이 벌어진 것도 사례로 언급할 있을 것이다. 당시 문제는 서울시민들의 태도에도 분명한 영향을 미쳤다.

트위터
등에서는 시장을 비난하거나 해명을 요구하는 의견이 봇물을 이뤘고 시장 업무수행 지지도는 급격히 떨어졌다. 마침내 시장 쪽에서 공개적으로 조사에 응하고 의혹이 사실무근이라는 점이 '언론을 통해' 밝혀지자 여론은 하루도 안돼 정반대로 돌아섰다.

 

인터넷과 각종 SNS 발달로 정보와 뉴스 출처는 급격히 다양해지고 있다. 충분한 시간만 있다면 전세계 각지에서 쏟아지는 각종 보고서와 다양한 언론보도와 의견들을 집에서 검토할 있는 시대다. 이런 때문에 '기존 언론' 공공 의제를 설정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인식이 상식처럼 퍼져 있다. 하지만 여기서 결정적인 변수가 있다. 바로 '충분한 시간'이다.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곤 모든 현안에 대해 일일이 정보를 분석하지도 못하고 심사숙고하지도 못한다. 거기다 포털사이트를 통한 뉴스소비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포털사이트 자체가 막강한 의제설정 주체로 등장했고 포털이 제시하는 뉴스가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어떤 면에선 신문이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력보다도 훨씬 강력하다. 그런 점에서 McCombs 결론에 뒤이은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
세팅은 오늘도 계속된다."



자 그럼 이 책이 보여주는 악몽같은 번역에 대해 얘기해 보도록 하자. 번역만 놓고 보면 이 책은 지난번 소개한 <퀀트>를 뛰어넘는 악몽같은 번역이라고 평하고 싶다. <퀀트>가 하청의 폐해를 보여주는 느낌이라면 이 책은 일단 성의가 없어도 너무 없다. 아래 목록을 한 번 보시기 바란다. 

'또한'을 '도한'으로 쓴다거나 '이슈의 집합과'를 '이슈의 집합와'로 쓰는 식인다. 아이오와 코커스를 '아이오와 코카서스'라고 버젓이 번역한 부분에서는 가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겠다. 
이건 도대체 번역자는 교열본을 읽어보긴 한건지, 출판사 편집책임자는 졸면서 일한건지, 하다못해 초고를 읽어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건지 온갖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 출판사인 엘도라도가 국내 유명 출판사의 임프린트라는걸 알고는 임프린트가 아니라 퇴출 아냐?하는 의구심이 더 커졌다. 


제목도 거론해야겠다. 일반적으로 의제설정이론으로 번역하고 의제설정이라고 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아젠다세팅이란 제목을 단 건 참 거부감이 든다. 이건 마치 '백설공주'라는 꽤 괜찮은 번역이 통용되고 있는데도 굳이 영화제목을 <스노우 화이트>라고 내놓는 것만큼이나 생뚱맞다. 

20. 배재. > 배제

25. 이슈의 집합와...언론에서의 이슈 집합가 그것이다. > 이슈의 집합과...언론에서의 이슈 집합이 그것이다.

29. 도한 > 또한

30쪽. 시간순적… 뭔 말일까…

67. 관점2 3 > 관점2 3

70. 이스턴 > 미국 동부

91. 이한 > 이런 혹은 이러한

126. 아제다 > 아젠다

133. 증거를 발견됐다 > 증거를 발견했다

146. 요미우리 신문는 > 요미우리 신문은

167. 트레임 > 프레임

201. 아이오와 코카서스 > 아이오와 코커스

217. 절박 > 적발

223. 우호적 보도는 공화당 후보의 지지율을 감소시켰다 > 부정적 보도는…

226. 방형 > 방향

227. 다수의 강간 사건을 포함해 언론에서 > 다수의 강간 사건을 포함해 언론에서

 

117쪽과 227쪽은 주석표시 착오

 

 

  1. 김성해.(2008). 『대외경제정책과 뉴스미디어』. 한국언론재단. [본문으로]
  2. 혹자는 사실 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정부나 대외경제정책이 차이가 있는듯이 말하지만 난 과연 얼마나 큰 변화가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FTA 협상 한국측 수석대표를 하다 2007년 본부장까지 승진한 김종훈은 정권이 바뀌고 나서도 본부장을 4년이나 더 했다. 통상교섭본부는 한국 통상정책을 총괄하는 자리다. 노무현이 시작한 한미FTA를 이명박이 마무리지었다는건 그저 물타기를 하는 변명이 아니라 사실 그 자체일 뿐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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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0 Comment 5
  1. BlogIcon seiren890 2012.06.24 18:0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관심있는 책이었는데 서평을 보니 번역에 문제가 많은가 보네요...그런데 저는 아젠다 세팅이라는 제목 때문에 오히려 관심이 갔었는데요(의제 설정이라는 제목이었다면 별로 주의깊게 안봤을것 같아요) 하여튼 미디어가 특정 관점만을 공론화시키는 것 같아서, 책에서 다루는 내용 자체는 매우 흥미가 갑니다...조만간 읽어봐야겠네요

    • BlogIcon 자작나무숲 2012.06.24 18:08 신고 address edit & del

      책 자체는 저도 대단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만 악몽같은 번역이 싫을 뿐이지요. ^^;;;

  2. BlogIcon 까마귀 2013.04.20 18:1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악몽같은 번역'의 예시만으로 보면, (이스턴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번역의 문제라기 보다는 '교정.교열'의 문제인 듯 싶습니다만... 67쪽만 하더라도 보이는 실수는 예시뿐 아니라 더 있죠... "특정 시점의 여론에 관해 포괄적고 유용한..." --> "포괄적이고" // "그대로 기술하고자 노력이다" --> "기술하고자 하는" //

  3. BlogIcon 까마귀 2013.04.20 18:1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더 추가해 볼까요... 44쪽 “이 모든 모든 아젠다 세팅” --> “이 모든...” // 83쪽 “정치적 사건에 관여하거는...” --> “관여하는” / “공종 아젠다” --> “공공” //
    217쪽 “입범의회” --> “입법의회”.... 숨이 차답니다^^

    • BlogIcon 자작나무숲 2013.04.23 13:26 신고 address edit & del

      말씀 듣고 보니 일리가 있습니다. 그래도 제 생각엔 번역자로서 자기 이름 걸고 책 나오는 거라면 자기가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교정교열은 해야 하는거 아닌가 싶습니다. 추가 정보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