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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6 00:08

박원순 아들 병역비리 괴담에 담긴 저들의 프레임



연초부터 강용석이라는 者‘가 온 나라를 잠시 시끄럽게 만든 박원순 아들 병역 ‘괴담’이 허무하게 혹은 뻔한 결론으로 끝이 났습니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용서하겠다고 하는데 가해자는 사과 한 마디 없습니다. 가해자 가운데 하나가 ‘나경원법’을 소리높여 외치던 곳이라는 걸 생각하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노릇입니다.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 당시 한나라당 후보였던 나경원은 ‘박원순이 강남에서 호화 아파트에 거주하며 월세만 수백만원짜리다’라고 공격했습니다. 정작 자신은 얼마나 비싼 집에서 사는지는 대답을 회피하면서 말이죠. 온 국민이 인사청문회나 각종 의혹 수사 과정을 통해 ‘스폰서’에 대해 학습한 뒤끝에는 ‘협찬’이라는 새로운 조어법을 구성했습니다.

 
박원순에 대한 공격 가운데 머리에 떠오르는 대표적인 것들을 열거하는 이유는 공격양상에 일관된 경향성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호박씨 프레임’ 정도 되겠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시민운동에 매진하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엄청난 부자’다, 훌륭한 시민운동가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기업들 뒷돈이나 받는다,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아들 군대안보내려고 비리를 저질렀다... 한마디로 ‘착하고 훌륭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호박씨’ 까고 있었다는 공격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나’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입니다. 서울시장 선거 당시 방송토론에서 박원순이 나경원을 향해 그런 표정을 많이 짓곤 했지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을 조금만 뒤로 돌려보면 논현동에 집 있으면서 내곡동에도 집 지으려 ‘몰래’ 시도하다 들킨 가카를 시작으로 박희태 국회의장이 국회의원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강남 땅부자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박원순 아들 병역괴담은 급기야 언론 앞에서 직접 MRI 촬영을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괴담의 사회적 해악"이라는 조중동 평소 논조가 맞다는 걸 이보다 더 잘 입증해주는 사례가 또 있을까나...


나경원 ‘전’ 의원을 포함해 현 정부에서 잘나가는 인사들이 저마다 엄청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지요. 스폰서 논란도 그렇거니와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비롯해 현 정부에서 잘나가는 인사 가운데 상당수가 병역면제이고 자식들도 군대 안간 인사들이 태반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이 이런데도 단지 강남 아파트에서 ‘월세’를 산다는 걸 정색을 하고 비판을 하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차마 스폰서라는 말은 못하고 ‘협찬’을 공격하고 병역 괴담을 유포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더 놀라운 것은 그런 공격이 잠시라도 대중들에게 먹힌다는 것이지요. 이쯤 되면 담론의 심층부에서 작동하는 뭔가가 대중들의 인식을 효과적으로 정렬시켜온 것들과 화학적 결합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듭니다. 그 뭔가는 뭘까요?

장정일에게서 발견한 저들의 '맥락'

 
최근 소설가 장정일이 쓴 글을 읽다 무릎을 쳤습니다. 제가 고민하던 바로 그 단초를 발견한 듯 보입니다. 바로 ‘멜로드라마’입니다. 저는 통속적인 국산 드라마를 꽤 싫어하는 편인데 착하고 순수(혹은 순진)하고 가난한 주인공이 악하고 간교하고 부자인 조연의 방해를 뚫은 뒤 착하고 순수한 부자가 되는 공식이 지지리도 마음에 안들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로 착하냐면 이혼한 뒤에도 자기를 쫓아낸 시어머니와 함께 제사 준비를 도와주는 며느리(유호정 역)도 있고 남편과 사별한 뒤 시어머니와 수십년째 함께 사는 착한 며느리(신애라 역)도 있습니다. 버림받은 조강지처가 자기를 버린 남편의 간섭에도 그저 참고 넘어갈 정도(오현경 역)이기도 하고요. 주몽, 대조영, 왕건, 연개소문, 거기다 연우 아씨까지 대부분 사극 주인공들도 원칙을 지키고 착한 사람들이지요.

 
장정일은 시사IN에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연재하는데요. 2월25일자 232호에서 <강성대국 꿈꾸는 '착하고 약한' 나라>라는 글을 게재했습니다. 그는 한국(북에서는 남조선이라 부른다)과 조선(남에서는 북한이라 부른다) 모두 멜로드라마의 가치체계에 사로잡혀 있다고 꼬집습니다. 바로 '선하고, 약한(가난한)' 편과 '악하고, 강한(잘사는)' 편이라는 대립 구도죠.

멜로드라마에서는 “전자의 도덕적 우월이 자신의 모든 결핍을 보상할 뿐 아니라, 최후에는 후자로부터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면서 “절대적인 궁핍을 견디는 북한 주민의 불가사의한 힘은 바로 저런 멜로드라마적 가치와 무의식에 사려잡혀 있기 때문이다.”고 갈파합니다. 자신들은 착하고 약한 멜로드라마 속 주인공이고 미국 제국주의자 등 각종 외부세력은 강하고 잘사는 악한들이다는 거죠.

 
장정일은 곧이어 '공지영 샤넬백'을 통해 한국사회를 해부합니다. 최근 <조선일보>가 '진보가 어떻게 500만원짜리 백을 맬 수 있느냐?'는 식으로 '진보 멘토' 공지영을 물어뜯으면서 논란이 시작됐습니다. 장정일의 발언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공지영의 샤넬백을 놓고 벌어진 <조선일보>와 진보 진영의 격돌은, 결국 서민의 마음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였다. 애초부터 이 싸움은 정치색이나 이념을 불문하고, 샤넬백을 살 수 있는 상류층의 마음을 놓고 벌어진 게 아니다. 서민은 <조선일보>가 만든 '진보가 어떻게 500만원짜리 백을 맬 수 있느냐?' 하는 문제틀 속에 든 '진보'라는 단어를, 거의 본능적으로 '착한 사람'으로 바꾸어버린다. 그래서 얻어진 답은 '착한 사람은 500만원짜리 백을 매지 않는다'로 귀결된다. 

이렇듯 멜로드라마적 의식 속에서는 공지영과 그를 변호하는 사람들이 졸지에 '악하고, 강한(잘사는)' 사람으로 둔갑한다. 따라서 <조선일보>는 손해 보지 않았다. 그들은 계속해서 '진보는 비즈니스석을 타지 않는다' '진보는 호텔 커피숍에서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진보는 자식을 유학 보내지 않는다' 식의 먹잇감을 노려야 한다.

 
보수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뇌물이나 큰 부정을 저질러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진보는 극히 적은 뇌물이나 작은 부정만으로도 치도곤을 당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은 도덕적 우월말고는 그 어떤 매력이나 치명적인 무기를 갖지 못한, '선하고, 약한(가난한)'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저는 소설가 장정일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가 쓴 소설을 읽어본게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저는 제가 존경하는 사람들 명단에 장정일을 감히 올려놓으려 합니다. 그가 제시하는 통찰력이 제게 많은 공감을 일으켰습니다. 저는 박원순 시장이 강용석 등 ‘가해자’들을 용서한다고 했을 때부터 그게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장정일 식으로 말한다면 진보는 ‘착하고 약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허상부터 깰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저는 ‘모든 걸 용서하겠다’는 식으로는 강용석도 변화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재발방지 효과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언론의 보도태도를 개선하는데도 도움이 안되지요.

하다못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해서 1면에 사과보도라도 하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용서는 가장 강력하고 고차원적인 행위라고들 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건 잘못한 놈이 눈물 뚝뚝흘리며 무릎 꿇고 빈다는 전제가 있을때나 성립하는 얘기입니다.

 
강용석은 박 시장이 자신을 용서한다고 한 직후 인터넷 방송 '저격수다'에 출연해 "저격수가 쏘다 보면 맞을 수도 있다"며 "계속 저격을 하려면 아무래도 국회의원 뱃지를 달고 있어야 할 것 같아 조만간 정식으로 출마 선언을 하고 본격적으로 선거에 돌입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자신을 '용서하겠다'고 한 데 대해서도 "박 시장이 저를 '용서한다', 이런 표현에는 제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라"며 "박 시장에게 굉장히 많은 문제가 있는데, 어쩌다보니 이것 하나 때문에 모두 신뢰를 잃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합니다. 

소셜메트릭스에 나타난 강용석 관련 SNS 동향


 
어차피 총선에서 떨어질꺼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 순진한 발상이 아닐까요? 저는 박 시장이 전교조의 선례를 따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교조는 회원 명단을 공개한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도 전혀 아쉽지 않은) 어느 한나라당 의원을 고소했고 그 의원은 손해배상을 해야 했습니다. 추징까지 당했죠. 그럼으로써 그 의원은 입을 닥쳤습니다. 아울러 분명한 정파적 목적 아래 보도했던 일부 신문들도 손해배상을 했습니다. 만약 전교조가 “용서하겠다”라고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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