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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5 18:57

'희생자 비난하기'를 넘어, 국내정치 측면에서 살펴 본 그리스 위기



2009년 말 이후 떠도는 세계경제 위기설 치고 그리스를 거론하지 않는 게 없다. ‘정부부채로 인한 국가부도 위험’이나 ‘복지포퓰리즘의 결과’ 같은 ‘희생자 비난하기’는 그리스를 짓누른다. 그렇다고 그리스가 마냥 선량한 피해자인 것은 아니다. 그리스 정치시스템을 통해 그리스 위기의 맥락을 짚어본다.


그리스 위기는 순전히 그리스가 잘못한 게 원인일까. 그렇게 보는 의견은 여기저기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위르겐 스타크 ECB 정책위원은 2010년 1월6일 “그리스의 문제는 그리스 자체의 원인으로 발생한 것으로 EU가 구제금융을 투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산은경제연구소, 2010: 142).


삼성경제연구소(2010)는 그리스 위기의 경제적 원인으로 재정수지와 경상수지의 동반 악화를 거론하면서 “그리스는 이미 1980년대부터 방만한 재정운영을 지속”했다고 지목했다. 그 근거로 “그리스는 GDP 대비 국가부채가 1980년 22.3%에서 2000년 103.4%로 증가하여 유로화 가입 조건을 충족하는 데 실패”했으며, 그럼에도 “재정통계를 조작해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규모를 속여 2001년 유로화에 가입”했다고 밝혔다.


그리스는 과도한 재정적자와 정부부채가 국가부도를 초래할 수 있다는 담론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조홍식(2010)은 “2010년 현재 그리스를 공격하고 있는 국제 자본과 금융기관은 2001년 그리스에 자금을 빌려주면서 장부와 통계조작을 도운 이들이며, 2008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정부 지원으로 가까스로 살아난 은행과 금융회사들이다. 전형적인 무임 승차 세력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리스 142.8%. 이탈리아 119%. 포르투갈 93%. 독일 83.2%. 유럽연합 평균 80%. 영국 80%. 스페인 60.1%. 핀란드 48.4% 2010년도 기준. 출처: 유럽연합 통계청


●과두제에 저당잡힌 민주주의


그리스 정치제도는 대단히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2010: 4)에 따르면 그리스는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4년 사이에 총리 대부분이 임기 1년 이내로 단명”했을 뿐 아니라 “1975년 민주화 이후에도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정치인과 유권자 간 유착관계로 인해 민주주의가 변질”됐다. 3대 유력 정치가문이 그리스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과두제 정치는 민주주의를 허약하게 만들었고 공공성을 위축시켰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지난 7월 5일 그리스 정치사 분석기사에서 파판드레우, 카라만리스, 미초타키스 등 그리스를 대표하는 3대 유력 정치 ‘왕조’ 책임론을 제기했다. 정부 곳간을 친구와 친척 같은 자기 편에게 던져 주는 족벌주의 체제로 국가를 사유화하고 국가기강을 무너뜨렸으며, 행정조직을 지나치게 비대하게 만들어 관료주의 괴물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그리스 경제위기, 유력 정치가문 책임론)

http://www.spiegel.de/international/europe/0,1518,772176,00.html


좌파 사회당(PASOK) 소속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 가문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이어 3대 모두가 총리를 역임하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현 총리인 파판드레우(앞쪽)가 아버지, 할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 찍은 사진. (출처: 슈피겔)

물론 이 집안이 단순한 기득권층인 것은 물론 아니다.


진영재·노정호(2003: 442)에 따르면 현 총리의 할아버지인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오 자유당 대표는 이른바 ‘단호한 투쟁’을 주창하며 극좌파를 포함하는 여러 정당들을 포섭해 중도연맹을 새로 구성한 뒤 1963년 선거에서 42% 득표율에 138석을 얻어 집권당이 되었고 곧이어 1964년 선거에선 53% 득표율에 171석을 얻어 단독 과반수를 획득했다. 하지만 곧이어 발생한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빼앗겼다.


우파를 대표하는 건 신민주당(ND)을 양분하는 카라만리스·미초타키스 가문이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총리를 역임했던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는 삼촌도 대통령과 총리를 지냈다. 콘스탄티노스 미초타키스는 1980년대 중반부터 10여년간 신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슈피겔은 봉건적 민주주의가 유지되면서 파판드레우, 카라만리스, 미초타키스란 이름은 총리, 장관, 당 대표 등 주요 정치 지도자로 수십 년째 변함 없이 정치 뉴스에 등장한다고 꼬집는다.


슈피겔은 “그리스에선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기존 인력은 줄이지 않은 채 측근과 이들의 가족과 친척들 수천 명을 정부 관료로 새로 채용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새 정부가 구성되면 “집권당은 이익집단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각종 산업과 농업 보조금, 고용보호, 임금인상 등 경제적 편익을 제공”했는데 대표적인 행태가 바로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표를 얻는 대가로 지역 유권자들에게 고용이 보장되는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었다(삼성경제연구소, 2010: 4~5).


카라만리스 총리(2004~2009)는 2009년 총선 직전 무려 1만개가 넘는 공직을 만들어내 친척들과 측근들에게 배분했다. 그가 집권하는 동안 그리스 정부부채는 두 배로 늘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2007년 그리스의 초등학교와 중등학교 교사 1인당 학생수는 각각 10.1명과 7.5명으로 교육 수준이 가장 우수하다는 핀란드(15.0명과 13.1명)보다도 적은 수준을 차지한다(삼성경제연구소, 2010: 5). 경제규모에 비해 교사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지


이익집단의 로비와 압력에 따라 국가재정이 좌지우지되는 지대추구 현상이 나타났다. 슈피겔은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도 붙잡을 수 있는 건 뭐든 붙잡으려 했다면서 “부유층은 세금을 탈세하고 공무원들은 뇌물을 받고 곳간을 열어 줬다.”고 꼬집는다.


그리스는 지하경제 규모가 크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24.7%나 된다. 낙후된 재정시스템, 세무공무원들의 부패, 납세자의 조세회피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그리스 정부는 2004년 이후 각종 감세 조치를 취했다.



2004년 35%였던 법인세율은 해마다 3~4%포인트씩 대폭 인하해 2007년에는 25%까지 떨어졌다. 거기다 소득세율 인하와 친척 간 부동산상속세 폐지 등으로 그리스 재정수입의 GDP 대비 비율은 2007년 이후 감소세를 보이는 반면 재정지출은 2006~2009년 동안 9% 포인트 증가했다.


●OECD 2위 장시간 노동과 연금소득대체율 95.1% 역설


경향신문(2011) 보도에 따르면 아리스티데스 하치스 아테네대학 부교수는 지난 8월11일 국회 초청 간담회에서 “복지지출이 빈곤층이 아닌 각종 압력단체로 들어갔고 그 효율성도 크게 낮아졌다.”고 말했다.


한국 주요 언론에서 강조하는 ‘복지포퓰리즘’은 실상과 전혀 다르다. 단적으로 2008년 기준 1인당 노동시간을 보면 그리스는 OECD에서 한국 다음으로 장시간을 일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120시간이나 된다. 2256시간인 한국과 136시간 적을 뿐이다. OECD 평균은 연간 1764시간이고 근면하기로 소문난 독일은 1430시간이다.

http://www.economyinsight.co.kr/news/articlePrint.html?idxno=102


한국 2256시간. 그리스 2120시간. 이탈리아 1802시간. 미국 1792시간. OECD평균 1764시간. 포르투갈 1745시간. 스페인 1647시간. 독일 1430시간. 2008년 기준 출처: OECD


사회보장지출 규모도 알려진 것과는 차이가 많다. 2007년을 기준으로 OECD 평균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지출은 19.3%였다. 그리스는 21.3%로 OECD 평균과 2%p 차이다. 가장 높은 비중은 프랑스로 28.4%, 일본은 18.7%, 미국은 16.2%, 한국은 7.5%다.

http://www.oecd.org/document/9/0,3343,en_2649_34637_38141385_1_1_1_1,00.html

그리스가 21.3%...한국은 7.5%로 멕시코 7.2%에 이어 2위. 입만 열면 복지포퓰리즘 망국론 외치는 분들에겐 멕시코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선진국인걸까. 미국도 16.2%로 한국보다 두 배가 넘는데... 2007년도 기준 출처: OECD


그런데도 그리스는 소문난 복지후진국이다. 왜곡된 자원배분 때문이다. 갈등해결이 어려운 것은 남성 가장이 일자리나 연금을 통해 가족경제를 책임지는 가부장제 전통이 강한 복지제도 특성과도 연관된다. 노인연금 비중은 지나치게 높고 사회서비스는 지나치게 빈약하다.


2006년 기준 복지지출에서 노인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66%나 된다. 유럽연합에서 최고다. 국회예산정책처(2010: 22~24)에 따르면 그리스는 고령화 관련 지출 비중이 사회보장 총지출 가운데 42.0%나 되고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95.1%로 유럽 최고 수준이다. 연금산정 기준도 퇴직 전 ‘5년 소득’을 기준으로 산정하고 연금 수급연령도 61세로 낮으며 조기은퇴옵션도 갖고 있다. 공공부문 보수도 2000년부터 2008년까지 100%나 인상됐다.


남유럽식 가부장 문화는 노인연금 위주 복지시스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신현중 한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그리스에서 국가는 가족 중 남성 가장에게 양질의 일자리와 연금을 보장하면서 가족이 스스로 복지를 책임지도록 했다.”면서 “연금이 과다하고, 공공부문 일자리가 많고, 여성 취업률이 매우 낮은 것은 그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모든 노인이 골고루 혜택을 누리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도 공무원이나 법조인 등 특정 이익집단이 과실을 차지했다(경향신문, 2011).


출처: 국회예산정책처(10.07)


가족과 실업자를 위한 복지지출은 2001년 기준 3% 정도에 불과하고 그리스 노동연구소(INE-GSEE) 2008년 보고서에 따르면 그리스 노동자 가운데 22%가 저임금 상태에 머물러 있다(경향신문, 2011). 2004년 현재 OECD 국가의 국민의료비 중 본인부담률 평균은 20.5%이지만 그리스는 45.2%로 36.9%인 한국보다도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그리스 합계출산율은 1.53명(OECD 평균은 1.73명)에 불과하다.


유로화 가입 이후 그리스는 가뜩이나 수출경쟁력이 약화된데다 전세계 금융위기에 직격탄을 맞으면서 경상수지와 재정수지에 심각한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산은연구소, 2010: 139). 국회예산정책처(2010: 20)에 따르면 그리스는 2009년 기준 제조업 비중이 10.3%로 OECD 최저 수준인 반면 서비스업 비중은 75.9%로 최상위권이어서 산업구조 자체가 경기변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믿음 못주는 사회지도층


과두제라는 특성 때문에 그리스 정치는 정책이 아니라 친소관계, 그리고 이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였다. 1975년부터 1996년까지 그리스 재무부는 정부 예산과정을 주도하지 못해 내각이 공동으로 예산안을 처리해야 했을 정도로 개별 부처간 예산조정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당시 그리스 재무장관은 내각에서 서열 10~11위에 불과했다(삼성경제연구소, 2010: 6).


2009년 말 이후 위기 국면이 지속되고 있는 속에서도 그리스는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재정지출을 줄일 경우 결국 과도한 노인연금과 공무원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성 가장이 일자리나 연금을 통해 가족경제를 책임지는 그리스 경제 특성상 그리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은 격렬한 반발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장기적인 건강재정을 위해서는 공무원 임금과 연금을 줄여야 하지만 이미 기득권층이 돼 버린 이들을 설득하기엔 정치 지도자들이 지금까지 해온 행태가 너무 미덥지 못하다. 


출처: 국회예산정책처(2010.07)


출처: 국제금융센터(110720), <남유럽 일부국 디폴트 발생시 글로벌 금융시장 영향>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지난해 펴낸 보고서에서 언급한 남유럽 경제위기 국가별 원인. 복지포퓰리즘이니 복지병이니 하는 건 나오지도 않는다. 출처: 대외경제정책연구원(100601) <남유럽 경제위기의 본질과 향후 전망>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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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경향신문.(2011). “그리스 위기는 과잉복지 아닌 ‘기형적 지출’ 탓”. 2011.8.12.


국회예산정책처.(2010). 『남유럽 재정위기와 정책시사점』 (경제현안분석 제53호).

남유럽 재정위기와 정책시사점 (국회예산처 .pdf


대외경제정책연구원(100601). <남유럽 재정위기의 본질과 향후 전망>

100601(대외경제정책연구원) 남유럽 경제위기.pdf


산은경제연구소.(2010). “그리스 재정위기의 영향 및 전망”

10.0210 그리스 재정위기 영향 전망. 산은경제.pdf


삼성경제연구소.(2010).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본 그리스 재정위기”. SERI 경제포커스 293호. 2010.5.18.

1005 그리스 재정위기 (삼성경제연).pdf


조홍식.(2010). “그리스 위기는 복지지출 탓이 아니다” 경향신문. 2010.3.8. 칼럼.



        참여연대.(2007). 『참여연대 ‘3대 가계부담 줄이기 운동’ 출범 자료집』

"주거비,교육비,의료비 가계소비지출 50%넘어"

당초 아래 논문도 참고문헌에 달아놨더랬다. 
진영재·노정호.(2003). “남부 유럽의 정치 변동; 근대화 전환 과정의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을 중심으로.” 『국제정치논총』43(1): 431~452. 

조금 전 확인해보니 방명록에 아래와 같은 글이 올라왔다. 3년 이하 징역이란다. 아이고~ 무셔라~~~ 내가 무슨 논문을 갖고 돈벌이를 한 것도 아니고 그 논문을 무단으로 표절한 것도 아니고 파일을 참고하라고 올려놨을 뿐인데 무슨 범죄자나 되는 듯이 대하는게 무척이나 불쾌하다. 하여 위 논문은 첨부를 지웠다. 더럽고 치사해서. 저작권법은 창작자의 아이디어와 창작물을 적절히 보호하는 게 주 목적이라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창작자의 창작물을 널리 알리는 것도 힘들어지니 자기모순이 아닌가 싶다. 이 시간에 논문 등 각종 창작물을 돈벌이로 장사하는 각종 레포트사이트나 잘 관리하는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DBpia 2012/07/04 19:36 edit & del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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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생자 비난하기'를 넘어, 국내정치 측면에서 살펴 본 그리스 위기_참고문헌 “남부 유럽의 정치 변동; 근대화 전환 과정의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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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eo-one 2011.10.30 11:4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자세한 통계적 수치에 대한 자료들 잘 보고 갑니다. 그 밖에도 유로존의 특성상 통합된 환율제도에 많은 피해를 보았다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2. 배병훈 2011.11.02 23:3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훌륭한 글입니다. 아주 잘 읽었어요 ^^

  3. 열린마음 2011.11.12 06:2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 글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