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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3 01:25

[서평]속고 속이는 거짓말 "당선되면 세금 깎아준다"


강원택 엮음, 2007, 『세금과 선거; 각국의 경험과 한국의 선택』, 푸른길.

2007년 대선 당시 여야 유력 후보가 공통으로 내건 공약이 있다. 이명박 후보나 정동영 후보, 문국현 후보 모두 한 목소리로 “유류세 인하”를 약속했다. 이유는 언제나 그렇듯 “서민경제를 위해서”였다. 대선 뒤 정부는 시민들한테 상당한 호응을 받으며 공약을 이행했다.

대선 당시 대선시민연대가 선정한 대표적인 나쁜 공약 4가지에 경부운하와 함께 바로 이 공약이 선정됐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유류세 인하를 단행한지 2년이 된 지금, 유류세 인하에 환호했던 시민 여러분께 정색하고 물어보고 싶다. “그래서, 살림살이 좀 나아지졌습니까?”

대선시민연대가 유류세 인하를 나쁜 공약으로 선정한 이유는 명확하다. 유류세 깎아줘봐야 아무런 효과도 없고 재정을 축낼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에너지정책을 교란한다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고는 나중에 정확히 현실이 됐다. 하지만 그게 뭐 그리 대수인가. 선거에서 인기 끌었고 박수 받으며 유류세 인하해줬다.

국민들은 그 다음은 기억하지 않는다. 유류세 인하로 생긴 재정 빈틈은 각종 부담금을 올리거나 다른 방식으로 거둬들이면 될 일이다.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공약은 어느 나라 선거에서나 단골 메뉴라고 할 수 있다. 당장 호주만 해도 에너지기업에 과세하려는 천연자원이익세 부과방침을 내놓았던 집권 노동당은 에너지기업 뿐 아니라 시민들한테도 역풍을 맞았고,

결국 단독 과반수 확보에 실패했다. 레이건이나 대처 같은 이들이 선거 과정에서 감세를 약속했던 것도 유명한 일화다.

우리에게 정말 심각한 고민을 던져주는 문제는, 선거에서 세금이란 쟁점이 깎아준다는 약속은 박수받고 세금 올린다는 약속은 돌맞는다는 데 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부자들 소득세를 깎아주니 워싱턴 지하철역에 있던 노숙자들이 제일 좋아했다는 ‘출처 불명’ 농담까지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과 선거의 관계에 대한 묵직한 연구서인 <세금과 선거; 각국의 경험과 한국의 선택>(푸른길, 2007)가 있다는 건 뿌리가 깊지 않아 바람 잘 날 없는 한국 사회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숭실대 선거․정당연구센터가 2006년 10월 주최했던 세미나를 바탕으로 강원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엮은 이 책은 선거와 세금 쟁점의 관계를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 스웨덴, 일본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 있다. 아울러 한국의 역사적 경험과 함께 조세법안에 국회의원들이 실제 어떤 투표행태를 보이는지 분석함으로써 깊이를 더한다.

사실 그동안 세금이라는 주제는 한국에선 큰 쟁점이 아니었다. <세금과 선거>는 서문에서 그동안 한국 선거에서 세금이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었던 이유로 세가지를 든다. 먼저 오랫동안 지속된 고도성장으로 개인소득이 꾸준히 늘고 세율도 그리 높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세금을 원칙대로 철저하게 납부하지 않아도 되는 제도적인 ‘빈틈’이 있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아울러 “지역주의나 이념 등 요인이 좌우한” 한국 선거 상황에서 “세금과 같이 실생활을 둘러싼 실용적인 정책은 표를 얻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였고 중요한 선거 쟁점이 될 수도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당장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양극화 심각성을 제기한 이후 증세․감세 논쟁이 벌어진 것을 비롯해 2007년 대선에선 종합부동산세가 공격을 받았고 소득세와 법인세를 줄여주겠다는 공약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대다수 유권자 관심이 경제, 취업, 교육 등 실용적인 문제로 쏠리고, 또 그만큼 복지재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올해 지방선거에선 무상급식 논쟁이 선거에서 주요 주제로 올라섰다. 4대강사업 논쟁이나 재방재정위기 논쟁 등을 겪으면서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도 예산 주제가 핵심 쟁점이 될 가능성은 무척이나 높아졌다.

<세금과 선거>는 “세금 이슈는 그 속성상 대단히 정치적인 것이다. 그런데 세금 부과의 대상과 규모를 결정하는 방식은 더욱더 정치적이다(5쪽).”라고 못박는다. 아울러 세금 문제가 선거에서 중요한 이유는 바로 “눈앞의 당선과 집권이라는 정치적 목표와, 정책적 신뢰와 책임성이라는 민주적 원칙 간 괴리와 갈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70쪽).”는 점 때문이다.

얼핏 생각하면 세금과 선거의 관계는 명확할 듯 싶다. 바로 유권자는 ‘더 많은 서비스, 더 적은 세금’만 원하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이렇게 가정하면 나중에 어떻게 되건 일단 ‘세금 깎아주겠다’고 하는 쪽에 표가 몰릴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포퓰리즘이 난무하고 조삼모사가 횡행한다. 하지만 <세금과 선거>를 읽어나가다 보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분명 “일반 국민 뿐 아니라 정치인들도 조세문제에 관해서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15쪽).”는 점은 있다. 미국의 경우 민주-공화 양당은 “선거를 앞두고 정강 정책에서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증세를 시도하지 않는다. 감세 문제에서 주도권을 잃은 정당은 주도권을 잡은 상대 정당의 감세 정책이 특정계층에게만 혜택을 준다고 비판하는 형태를 보여왔다(18쪽).” 또한 “조세구조의 변화는 그 변화의 방향성(세금의 증감)에 관계없이 현직자에게 정치적 비용이 된다(27쪽).”는 점에서 세금 문제가 얼마나 뜨거운 감자인지 알 수 있다.

영국 경우에도 1951년~2001년 기간 동안 세금과 집권당 지지율 관계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실질적인 세율이 인상되면 그만큼 집권당의 교체가능성, 즉 선거패배 가능성이 커진다.”면서 “세금정책이 집권당의 인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드러난다고 한다(52쪽).

여기까지만 보면 짐작이 맞는 듯 싶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세제개혁을 논의한 일이 적지 않다.(108쪽).”는 대목에 이르면 언제나 그렇듯이 미국과 영국 경험은 다만 두 나라 사례일 뿐이라는 점을 느끼게 된다. 아울러 스웨덴의 경우에서도 세금 문제는 선거에서 중요한 쟁점이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세금과 선거>에서 눈여겨 볼 것은 선거제도가 갖는 중요성이다. 비례대표, 단순다수, 절대다수, 혼합제도 등 어떤 제도냐에 따라 선거와 세금의 관계가 달라진다. 다시 한번 제도, 즉 ‘게임의 규칙’이 차이를 만들어낸다.

“비례대표제에서는 다수를 대상으로 (특정 대상이 정해지지 않은) 일반적인 정책을 추구하지만 단순다수제에서는 특정 선거구를 겨냥한 정책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78~79쪽).” 단순다수제인 미국, 영국, 캐나다는 ‘특정대상 정부재정지출’ 양상이고 스웨덴은 ‘광범위한 대상 정부재정지출’ 양상이다.

선거구 규모도 영향을 미친다. “
선거구 유권자 수와 정부지출은 반비례하지만 소득과세와는 정비례한다. 에반스는 캐나다에서 선거구에 한 명이 적으면 정부 지출이 평균 0.03달러 증가하고 소득세는 평균 0.01달러 감소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91쪽).” 그 결과 “캐나다는 상대적으로 작은 지역구에 연방정부의 지출은 늘어나고 소득과세는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89쪽).”

최근 정부 여당에서 내놓은 중선거구제가 끼친 악영향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일본은 전후 대부분 동안 중의원 선출에 중선거구제를 채택했기 때문에 정책쟁점에 입각한 투표가 어려웠다. 같은 선거구에서 같은 정당 후보자 간 대결이라는 상황은 정당정책에 기반한 선거전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선거는 후보자 개인의 능력, 후원회 조직의 규모와 동원력에 좌우되었다(150쪽).”

낮은 소득세 비중과 높은 간접세 비중, 종합소득세제 미정착, 낮은 부동산 보유세, 재산세 기능 미약, 재산과 사업소득에 집중된 조세감면, 부가가치세의 역진성을 시정하지 못하는 특별소비세”가 특징인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266쪽). <세금과 선거>는 17대 국회 개원부터 2005년 8월까지 본회의 전자표결에 회부된 조세 관련 법안 30건을 대상으로 17대 국회의원들의 조세법안 투표행태에 대한 분석을 실었는데 일부에서 주장하는 진보-보수 대립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찬성투표가 지배적인 법안들은 빈부격차해소, 소득재분배, 사회안전망 구축 등과는 무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특소세 과세대상 축소, 법인세와 소득세 세율인하 등 감세정책과 기업에 대한 각종 세제혜택 등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적극 지지한 조세법안들은 사실상 2004년 정기국회에서 한나라당이 교섭단체 연설을 통해 주장한 감세 패키지 내용과 똑같다. 조세정책에 대한 투표행태를 볼 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책 차별성은 거의 없었다(261쪽).” “한국 유권자의 정당 지지가 정책 지지의 성격을 갖지 못한다는 점”은 유권자들이 꼭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 아닐까 싶다.

세금과 선거는 지금까지는 부차적이었거나 선심성 공약(정확히 말하면 대국민 사기극)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특히나 ‘예산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온 국민에게 각인시킨 점이 최대 치적’이라는 뼈있는 농담이 나오는 현 정부를 거치면서 이제 예산문제 세금문제는 ‘정치의 최전선’ ‘정책의 최전방’이라는 제자리로 돌아오는 양상이다. 다음 선거에선 부디 ‘언 발에 오줌누기’ 혹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방식이 아니라 정말 솔직하고 ‘사실에 근거한’ 토론이 활발해지길 기대해 본다.

<이 글은 월간 '좋은예산' 10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상관이 있습니다. 어떤 상관인지는 각자 생각해보시길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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