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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6 12:04

복권은 저소득층 지원 예산을 ‘대체’할까 ‘보완’할까


아내와 나는 가끔 로또를 한다. 내 경우는 딱히 될거라는 기대는 안하고 재미로 한다. 1등 당첨 될 경우 어떤 인센티브를 줄 것인가, 가령 용돈을 지금보다 얼마나 늘려줄 것인가 같은 문제로 아내와 갑론을박을 벌이는 재미는 나름 쏠쏠하다.

불경기고 월급 아껴서는 내집마련은 요원하기만 하고, 학비는 욕나올 정도로 늘고 월급은 욕나올 정도로 안는다. 이럴 때 로또 한장은 한달에 몇 번 하는 정도만 아니라면 나름 기분전환은 된다. 그런 마음으로 로또에 색칠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가 보다. 
 
흔히들 복권을 만들 때 정부가 내세우는 명분은 ‘서민 복지 지원’에 쓸 기금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로또 광고는 그 점을 아주 아주 많이 강조한다. 그런줄로만 알고 있는 서민들에겐 상당히 기분 나쁜 소식이 들린다. 조선일보는 2월16일자 20면에 “당초 취지와 다른 용도로 전용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전체 복권기금 법정배분금 1873억원 중 62%가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분류된 (16개) 지방자치단체와 과학기술진흥기금, 중소기업진흥기금, 제주도개발특별회계 등 모두 4개 부문에 작년 한 해 동안 1168억원이 지원됐다.”

조선일보는 원인으로 기존에 분산돼 있던 복권 업무를 2004년 재정부 복권위원회가 전담하게 되면서 기존 9곳에 수익보전 명목으로 복권 수익금의 30%를 매년 별다른 조건 없이 나눠 주도록 규정한 것에서 원인을 찾았다. “복권기금 법정배분금은 ‘서민 복지 지원’에 사용하는 것이 원래의 취지이다.

이 기사에서 나름대로 의미심장한 대목은 원인부분에 이어 나오는 다음 구절이다.

"법정배분금 규정 때문에 이전에 분배한 복권기금이 남아 있어도 환수하지 못하고 추가배분을 해야 한다. 또 ‘서민 복지’와는 관련이 없는 다른 예산과 섞어 사용되는 사례도 많다고 재정부는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나, 지원금을 받는 기관들의 반발로 난항을 겪고 있다.”

쉽게 말해서, 기획재정부가 복권기금을 모두 관리해야 하는데 그게 안되면서 나눠먹기식으로 비효율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는 말이다.

재정부 입장이 일리가 없는건 아니겠지만 더 중요한 문제를 놓쳤다. 재정부 산하 복권위원회 역시 국무총리실 산하 사행산업감독위원회(사감위) 통합에 저항하며 ‘나눠먹기’로 유지된 조직 아니던가? 일원화된 통합을 위한다면 복권위를 사감위로 통합하는게 맞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존재한다. 바로 복권이 저소득층 지원예산을 ‘보완’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대체’하는 존재인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고민의 폭을 더 넓혀 보면 복권은 세금인가 아닌가, 과연 공정한 세금인가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

데이비드 니버트가 쓴 『복권의 역사』(신기섭 옮김, 2003, 필맥)은 복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에서 나온 지적들을 간략히 발췌 인용해 본다. 이 책에서 언급한 사례들은 기본적으로 미국에 국한되지만 한국은 과연 얼마나 다른지 의문이다.

니버트(2003: 90~91)에 따르면 복권은 17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는 자본을 창출할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사기와 부패, 빈곤층 착취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고 이 때문에 국민경제를 위기에 몰아넣은 적도 있었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공식적인 금융기관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복권은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미국의 경우 복권이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주 정부가 산업침체와 일자리 감소에다 세금 인상에 대한 반발까지 직면한 상황에서 금고를 채워야 할 절박함 때문이었다(니버트, 2003: 86). 미국 주 정부와 지역 정부들은 1980년대 내내 이중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다. 경제침체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방정부는 예산지원을 줄여 나갔다(니버트, 2003: 87-88).

이 때문에 니버트(2003: 98)는 “오늘날 복권은 기업 구조조정과 사유재산 집중화가 심해지는 와중에 빈털터리가 된 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됐다.”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세수 문제가 요즘 주 정부 복권사업의 존재 이유다. 복권을 도입한 모든 주 정부가 세수 증대 가능성을 주로 강조했다.” (듀크대학 경제학자 찰스 T. 클로트펠터, 필립 J. 쿡) (니버트, 2003: 88)

이제 아까 던졌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복권은 세금인가 아닌가, 복권은 결국 보이지 않는 세금이다. 그것도 아주 아주 역진적인 세금이다.

재벌 3세들이 복권한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나? 복권은 우리같은 서민들이 한다. 잠깐이라도 대박을 꿈꾸며 위안을 삼는거다. 그렇게 몇천원씩 정부에 세금을 내는거다. 그렇게 모인 돈이 1년에 무려 2000억원 가까이 된다. 그 돈으로 애초 명분인 저소득층 지원이 아니라 딴 데 쓰는 거다. 설령 저소득층 지원에 쓰더라도 그 지원금은 국가가 내놓아야 할 복지예산을 ‘보완’하는게 아니라 ‘대체’해 버린다. 처음엔 정규직을 ‘보완’했던 비정규직이 언제부터인가 정규직을 ‘대체’해 버리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다. 그러다가 복권 수익금이 줄어들면 어떻게 될까? 복지예산은 휘청 하게 되는거다.

니버트(2003: 106)는 단언한다. “대니얼 수츠는 1977년 세금 역진성에 대한 연구를 벌인 결과 정부 복권사업이 판매세보다 두세배는 더 역진적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 정부가 운영하는 복권은 역진적이며 그 역진성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연구보고가 늘고 있다.”

“1991년 복권 수입 전체를 교육에 투입한 주들을 보면 복권수입은 전체 교육예산의 11.1%를 차지했다. 각 지역별로 조성한 교육사업비까지 포함해 계산하면 이 비율은 3.8%에 불과하다. 복권이 교육을 포함한 각종 지원대상 분야에 그대지 대단한 기여는 하지 못한다. 이는 복권을 통해 확보한 추가 교육예산만큼 주 의회가 교육에 배정하는 일반예산을 줄이기 때문이다(니버트, 2003: 120~121).”

미시간, 뉴욕, 일리노이 등 3개 주에 대한 연구는 공통적으로 복권수입이 주 정부 교육예산을 확충하는 게 아니라 대체하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했다(니버트, 2003: 122).”

니버트 주장을 입증해주는 언론보도도 소개할 수 있다. 연합뉴스가 2007년 10월 8일 보도한 <'美 복권 수익 교육에 투자한다더니...'>라는 기사다. 이 기사는 뉴욕타임스가 10월 7일 보도한 내용을 인용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재원이 모자라는 공교육과 다른 공익사업들에 필요한 돈을 조성하기 위해 각 주들이 복권사업을 합법화하면서 42개주가 복권사업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23개주가 복권사업에서 거둔 수익의 전부나 일부를 교육투자에 배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취재 결과 실제로 2006년 복권수입을 공교육에 쓴 비중은 1~5%에 그쳤다.

“뉴저지주의 경우 연간 24억700만달러 어치의 복권을 판매해 35%의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수입의 0.4%만 공교육 지원에 사용해 비중이 가장 낮았다. 68억300만달러 어치를 판매한 뉴욕주의 경우 교육 투자 비중이 가장 높았지만 그 비율은 5.3%에 머물렀다.”

그럼 복권 수익금 대부분은 어디로 갔을까? 복권 마케팅이나 상금, 판매업자 수수료 등 단순히 복권사업 자체를 유지하는데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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