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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1 18:30

군인들 국어실력도 국가안보라 우기는 국방부




장병들 국어실력도 국가안보?

정부가 정보공개 확대를 위해 만든 인터넷 사이트에서 흥미로운 연구보고서를 발견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연구보고서를 내려받을 수 있다. 그 연구보고서 파일을 홈페이지에 게재한다. 

당신은 조만간 “저작권법 위반이니 즉시 해당 파일을 삭제하라.”는 공문과 전화를 받을 수 있다. 전화를 한 곳은 로펌이 아니라 그 연구보고서를 발주한 국립국어원이다.

처음 제보받았을 때는 저작권에 관한 얘기인줄 알았다. 하지만 이건 저작권 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국방부가 문제였다. 그래서 내가 쓴 기사 초고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국방부가 ‘국가안보’와 ‘사기저하’라는 모호한 이유를 들어 시민단체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자료를 삭제하려는 시도를 벌인 사실이 서울신문 취재 결과 밝혀졌다. 국방부는 앞으로도 개인 블로그를 비롯한 온라인에 파일을 퍼뜨릴 경우 삭제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심지어 저작권법 적용 대상이 아닌 발췌·인용에 대해서도 삭제 요청하겠다는 입장이어서 현행법까지 무시한 온라인 통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자초지종을 따라가 보자.

국방부가 문제삼은 자료는 국립국어원이 상명대 국어교육과 박재현 교수에게 연구용역을 맡긴 ‘국군장병의 국어능력실태조사’다.

이 연구보고서는 계급별·연령별·성별 등 차이에 따른 국어능력을 설문과 인터뷰를 통해 조사한 뒤 국군장병의 특성에 맞는 의사소통 교육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정책대안을 제시했다. 정부용역 보고서이기 때문에 재원은 당연히 국민 세금에서 나왔다.

국가안보는 알아도 '프리즘'은 모른다

국립국어원은 이 보고서를 지난 1월 중순 정책연구용역 결과물 전문을 공개하도록 돼 있는 정책연구정보서비스, 일명 ‘프리즘(www.prism.go.kr)’에 올렸다. 국방부는 이 사실을 3월 중순까지 모르고 있었다.

취재하면서 느낀 거지만 국방부는 지금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프리즘에 올라온 공개자료…”라고 질문을 하면 국방부에선 “국립국어원이 자료를 유출…”이라고 답했다.

문제가 터진 건 3월 중순 시민단체인 정보공개센터가 이 보고서 내용을 전문과 함께 홈페이지에 소개(군인들의 국어실력은 몇 점?)하고 어느 경제신문에서 “핵심에서 벗어난” 보도를 하면서 불거졌다. 국방부에선 국립국어원에 ‘보안성검토’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정보공개센터에 ‘유출’한 자료를 회수해달라.”고 3월 18일 요청했다.

국립국어원은 난감해졌다. 국방부가 협조해주지 않으면 이런 연구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무슨 이유를 들어 시민단체에 자료를 내리라고 요구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다 생각해낸 게 바로 ‘저작권’이다.

국립국어원은 저작권위원회에 문의했다. 그리고 국방부 요청을 받고 일주일 뒤인 25일 저작권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파일을 삭제할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정보공개센터에 발송했다.

정보공개센터 “소송 걸리는 한이 있어도 삭제 못한다”

삭제 요청을 받은 정보공개센터는 ‘국가안보’와 ‘사기저하’라는 모호한 이유로 기초학문 연구결과까지 비공개로 하는 것은 정보공개를 통한 행정 투명성 확보라는 취지를 정면으로 역행하는 행태라며 반발한다.

이 단체 전진한 사무국장은 “모든 국가기록은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이 정보공개법의 기본 원칙”이라면서 “국가안보와 상관도 없는 연구물을 납득할만한 이유도 없이 삭제하라는 요구를 결코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립국어원이나 국방부에서 소송을 걸어와 법정에 서는 한이 있더라도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라고 결연한 의지도 밝혔다.

불온서적 선정으로 출판시장 위기 극복을 통한 일자리나누기에 공헌한 국방부. 대통령은 하루빨리 국방부장관에 문화훈장을 줘야 한다.


국방부에 왜 이런 일을 벌이는지 이유와 근거를 물어봤다. 자료를 삭제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국방부 관계자는 “국방부에서 군사 관련한 연구자료나 내부 문건이 밖으로 나갈때는 군사보안성검토를 받아야 하는데 그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삭제를 요청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의 얘기인즉슨 보안성검토를 받아야 공개/비공개 여부가 판가름난다는 거다. 그럼 보안성검토를 받지 않은 상태에선 공개인지 비공개인지 판단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 관계자는 “연구보고서에 대한 보안성검토를 언제 할지는 아직 미정”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국방부는 보안성검토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세상에 공개된 자료를 제재하려 시도했다. 

국가안보는 법보다 우선하나

이와 관련 국방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애초 국방부와 관련된 연구이기 때문에 보안성검토를 거친 후에 공개 여부를 판단하기로 국립국어원과 협의했는데 국립국어원이 그 사실을 까먹고 정보공개센터에 자료를 넘겼다.”고 주장한 뒤 “그 사실을 인지하고 국립국어원에 ‘왜 우리와 협의 없이 그 자료를 넘겼느냐. 삭제해 달라. 보안성검토를 마친 후에 결정하겠다.’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에게 물어봤다. “그 보고서 파일을 올리는 방식이 아니라 발췌나 인용을 한 블로그나 홈페이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도 삭제요청할건가.” 국방부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다. “그 모든 걸 포함해서 삭제해 달라고 국어원에 요청을 이미 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에게 물어보니 발췌 인용은 저작권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보안성검토 절차는 이렇다. 먼저 담당 부서에서 자체적으로 자료에 대해 군사상 위해사항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한다. 그 검토결과를 해당 과장과 국장에게 승인을 받는다. 군사상 기밀이 첫째 기준이고 기타 국가안보, 국민의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자료들, 진행중인 재판과 관련돼 있는지, 범죄나 수사와 관련되는지, 공사나 입찰과 관련되는지 등을 살핀다.

공개자료가 비공개로 변신하다

국립국어원은 국방부 요청을 받은 이후 프리즘에 공개로 해놨던 연구보고서를 비공개로 바꿔버렸다. 공개 자료를 비공개로 바꾸는 건 대단히 이례적이다.

행정안전부 지식제도과 담당자에 따르면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연구보고서를 국민들에게 공개하자는 것이 프리즘을 만든 취지”다. “정부는 관행상 저작권과 사용권을 갖고 국민에게 포괄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하고 있다. 연구용역을 발주할 때 인터넷에 게재할 권리까지 확보하고, 대국민 서비스를 하도록 권장한다는 팝업창을 작년 11월부터 12월까지 한 달 동안 프리즘에 띄우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정책과 김현모 과장은 “자유이용과 보호 두 가지가 저작권제도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 말을 듣고 저작권법을 찾아봤다.

저작권법 제1조(목적)는 “이 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했다. 일부에서 저작권법을 저작권자의 권리만 보호하는 법인양 행동하지만 그건 저작권법의 한쪽면만 본 것일 뿐이다.

이번 연구보고서도 저작권이나 사용권은 국립국어원에 있다. 그건 국민에게 정보를 공개하기 위한 취지라는 얘기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은 그 저작권을 ‘알 권리’를 막는데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국립국어원이나 연구책임자였던 박재현 상명대 국어교육과 교수 입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박 교수는 “국방부가 군인들의 국어사용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연구자로선 고무적이다.”면서 “애초에 내부진단용이었기 때문에 자칫 후속 연구가 위축되지 않을까 싶기 때문에 나도 비공개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국립국어원 정희원 국어실태연구팀장은 “보고서의 일부 내용만 선정적으로 왜곡한 보도가 나온 이후 배경이나 취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공개될 경우 오해가 재생산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프리즘에선 비공개로 했지만 정보공개청구를 하면 파일전문을 공개한다.”고 설명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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